말씀묵상

[말씀묵상] ‘믿음과 형제애로 평화의 열매를!’ / 부활 제5주일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8-04-24 수정일 2018-04-24 발행일 2018-04-29 제 309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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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명 지키는 그리스도인 삶은
말과 혀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제1독서  사도 9,26-31   제2독서  1요한 3,18-24   복음  요한 15,1-8)

부활의 기쁨과 평화의 축제가 이어져 부활 제5주일을 맞은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포도원으로 초대하여 포도나무의 비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참된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어있는 우리가 주님을 믿고 형제애를 나누면 주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물러 평화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오늘의 복음말씀(요한 15,1-8)을 묵상하면서 지난날 한 포도원을 방문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까운 팔로알토(Palo Alto)에 살던 시절 미국의 이름난 포도산지 나파벨리(Napa Valley)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넓은 대지에 그림 같은 와이너리(winery)에 들러 좋은 와인을 시음해보는 기회였습니다. 그때 포도원 주인으로부터 와인의 품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자면 포도 수확이 좋아야 하는데 충분한 일광, 신선한 기후, 튼튼한 가지가 필수랍니다. 기상조건은 자연현상이기에 포도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수확하려면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한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머물러라.”(요한 15,4) 하고 거듭거듭 당부하십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0,4-5) 그렇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뿌리로부터 뽑아 올린 수액을 공급받아 탐스런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주님 안에 머무름’은 무슨 의미일까요? 오늘의 제1독서(사도 9,26-31) 말씀이 그것은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굳센 믿음임을 귀띔해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도 바오로(사울)가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빛과 소리를 체험하면서 회심(사도 9,3)을 합니다. 유다인의 박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함께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를 합니다. 바오로가 자신의 출생지인 타르수스로 내려가 교통도 험난했던 시대에 지중해 지역에로 세 차례나 위대한 전도여행을 하면서 지역교회와 소통한 서간들이 신약성경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제2독서(요한 1서 3,18-24)에서 주님의 애제자인 요한 사도는 ‘주님 안에 머무름’은 애덕의 실천으로 새깁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과 혀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요한 1서 3,18)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심은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합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신심생활을 ‘야곱의 사다리’에 비유했습니다. 사다리의 두 기둥은 기도와 성사이고, 가로로 놓인 나무는 사랑의 계단입니다. 기도와 성사로 계단을 오르며 성덕을 쌓고, 다시 내려와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녀들의 손길과 발길에 자비하신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 자신의 힘과 재물과 명예만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이르십니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그리스도의 몸’이신 성체로 자녀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는 행복합니다.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 피정을 가거나 성체조배를 하면서 주님의 현존 앞에 머물러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은총입니다.

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다고 해서 모두 열매를 맺는 건 아닙니다. 열매 맺지 못한 가지가 값진 생명의 수액을 짜먹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그런 가지는 다 쳐내시고, 열매 맺는 튼실한 가지만 깨끗이 손질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요한 15,2)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주님 안에 머무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분을 따르면 많은 열매를 맺고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요한 15,8)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겠습니까? 공관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마르8,34; 루카 9,23)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사랑의 모델이십니다. 부활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의 문을 여신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버리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분이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 12,24)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생명나무’인 십자가를 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손길이 열매 맺는 삶입니다. 주님과 친교 속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청하면 이루어집니다.(요한 15,7) 그리스도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 친교로 사랑의 일치를 이룰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어있기에 그리스도교회는 연대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형제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제단과 수도회는 형제적 공동체로 사랑의 일치를 이루고 형제애를 나누는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기도와 성사로 신심을 기르고 생명의 빵을 나누며 친교를 이루어 사랑과 봉헌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수석사제와 원로들에게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이야기(마태 21,33 이하)를 하셨습니다. 포도밭을 일구는 소작인들이 자기중심의 시비를 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이를 두고 이사야 예언서(이사 5,1 이하)는 “주인이 좋은 땅 산등성이에 땅을 일구고 포도나무를 심어 좋은 포도가 주렁주렁 맺기를 바랐는데 소작인들 사이에 시비가 일어 좋은 포도는커녕 들 포도를 맺고 말았다”고 전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하신 예수님께서 자녀들에게 당신 안에 머물러 진실한 우정으로 형제애를 나누기를 당부하십니다. 주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친교의 공동체를 이룰 때 평화의 열매를 맺고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아멘.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