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부활 미사 / 서영준 신부

서영준 신부rn(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
입력일 2018-04-24 수정일 2018-04-24 발행일 2018-04-29 제 309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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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이라는 특수 사목직을 맡은 뒤, 올해 처음 고등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부활 미사를 준비하게 됐다.

우선 신자가 아닌 비신자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보니 학생들이 단순히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부활 미사를 해야 하는 시점이 아직 학기 초라는 점을 감안해 올해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시작한 신입생들의 환영 의미를 동반한 미사라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학생회 담당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학생회 차원에서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영상을 만들고, 또 학교 동아리 가운데 사물놀이와 밴드 동아리의 협조 안에서 간단한 공연을 준비해 신입생 환영의 의미를 더하고자 계획했다.

부활 미사의 전례 봉사 부분, 곧 해설과 독서, 신자들의 기도, 성가대 및 반주 부분은 고민 끝에 1학년 담임선생님들과 2학년 음악 담당 교과 선생님께 부탁했다. 학기 초라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준비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신입생 환영의 의미 안에서도 선생님들이 준비하고 보여주는 것이 신입생들에게 크게 와닿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감사하게도 선생님들 전체가 흔쾌히 봉사를 허락해 주셔서 전례 준비 부분에서도 별 차질 없이 준비될 수 있었다. 체육관에서 미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 부분에서는 보건 수녀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강론이었다. 비신자가 대부분인 학생들에게 부활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부로서 이미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신자들을 대상으로 강론하듯이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부활이라는 의미를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 보았지만 그렇다 할 대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부활 미사는 부활 팔부축제 내 수요일 오후에 교장 신부님의 주례로 이뤄졌다. 신자가 아닌 학생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평소 본당에서 미사 하던 때와 다른 긴장감,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날따라 복음도 제법 길었는데, 복음을 읽는 도중 나도 모르게 화답송으로 불렀던 성가 ‘평화를 주노라’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 분심 속에서 복음을 다 읽고 찰나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잠깐 망설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다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심정으로 “부활이 주는 의미를 여러분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 화답송으로 불렀던 성가를 통해 그 느낌을 갖게 하고 싶다”고 말한 후 성가를 불렀다. 웬일인지 학생들이 떠들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고 노래가 끝났을 때는 굉장히 고맙게도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렇게 성가를 부르고 준비했던 짧은 강론을 마무리한 후 계속 미사를 진행했는데, 다행히도 미사가 끝날 때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미사가 잘 마무리됐다.

그날 일과를 마친 후 1학년 담임선생님들과 회식 자리를 갖게 됐는데, 한 선생님께서 어떻게 강론 때 노래 할 생각을 하셨냐면서 ‘신의 한 수’였다는 표현을 해 주셨다. 왜 노래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러면 좋을 것 같다는 순간적인 판단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게 분명 미리 준비한 부분은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부족한 나를 성령께서 이끌어주셨구나.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부족한 나를 통해 학교라는 사목 공간 속에서 내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분이 더욱 더 잘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영준 신부rn(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