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1) 버럭의 주범, 오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4-17 수정일 2018-04-17 발행일 2018-04-22 제 309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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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욱 -’하면서 ‘화’, ‘분노’ 감정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 시기 동안 분노 감정을 살피고자, ‘내적 평화’를 유지하는 묵상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수사님으로부터 면담 신청이 들어왔고, 나는 수도원 응접실에서 그 수사님과 만나 영적 동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수사님은 네 분이 생활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데, 요즘 사소한 문제로 동료 수사님들과 갈등이 생겨 힘들어하셨습니다. 2시간 정도 면담을 했는데, 나는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면담이 끝난 후 수사님은 해답을 찾았다며 기쁘게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 수사님이 겪는 갈등을 통해 좋은 수도생활의 길로 이끌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 저녁 무렵에 ○톡이 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 수사님의 메시지였습니다. 내용인 즉,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수사님들과 사소한 문제로 갈등이 폭발해서 또다시 큰 마찰이 있었고, 지금은 기도 중에 하느님께 의탁하고 있으니, 부족한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공동체 안에서 형제들과의 갈등, 그리 쉽게 풀리겠나! 스스로가 먼저 변화의 결심을 해야 할 텐데. 그리고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 형제들을 응시하는 눈빛, 특히 자신 스스로를 관대하게 대하는 마음과 온유의 마음을 가지고자 노력할 때 조금씩 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기도 중에 그 수사님이 걱정이 되어 SNS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수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리고 힘내시고요.”

그러자 수사님으로부터 이런 답장이 왔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달리 말하면 침묵하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기도하고 싶으십니까? 침묵의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이 답장을 받는 순간 나는 또 ‘버럭-’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수사님이 걱정이 되어, 나름 신경을 써서 ○톡을 보낸 것인데, 나 - 원 - 참, 침묵하라고! 그래, 침묵하지, 뭐. 음. 어쩌면 아침부터 웬 ○톡질을 하느냐고, 그냥 나에게 침묵 좀 하고 싶다고 보낸 문자라면…. 음. 해야지, 침묵. 그리고 내가 잘못했네.’

나는 스스로 화를 삭이며, 수사님에게 ○톡으로 짧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톡 안 할게요, 수사님. 좋은 침묵 잘 하시고요.”

그런데 10여 분 정도 지나서, 수사님으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수사님들과 있었던 갈등은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었고, 이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곧이어서 이런 메시지도 같이 보내왔습니다.

“신부님께 답장을 보내려고 글을 쓰다가 신부님의 ‘버럭’ 문자를 받고 대박 웃음이 났습니다. 앞에 보낸 글은 어느 신자분이 보내 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글인데, 신부님과 나누려고 보낸 거예요. 그런데 신부님의 엉뚱한 버럭 문자 덕분에 지금도 웃고 있습니다.”

‘아, 창피해! 내가 또 감정 조절을 못했구나. 나는…, 구제불능인가!’

그렇습니다. 살면서 경험하는 ‘버럭’했던 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주범이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부정적 생각’이 만들어낸 오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오해로 ‘버럭’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자주 ‘버럭’하는 나 자신 또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