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항상 깨어 있어야 할 때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4-17 수정일 2018-04-17 발행일 2018-04-22 제 309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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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공식 언론 매체들이 북한의 노동당 정치국회의를 보도하면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고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역시 5월 혹은 6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며, 이를 위한 물밑 접촉이 진행 중임을 밝혔다. 특히 CNN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물밑 접촉은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현 CIA 국장이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당분간 한반도에서 대화 국면은 확실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협상의 원칙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협상의 성공을 위해 북한은 핵폐기의 진정성과 핵폐기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풀어 줘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늘 주장하고 있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와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확답을 줘야 한다. 난제 중의 난제인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 타결을 위해 서로 간의 가장 중요한 요구에 대한 분명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흔히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 틀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처럼, 큰 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합의가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 지난 20여 년 동안의 북핵 문제였다. 따라서 큰 틀의 합의 자체가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북핵 폐기의 프로세스가 CVID라면, 북한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프로세스 역시 CVID여야 한다.

그런데 북미 간의 불신 때문에 합의 과정과 합의의 이행에 있어 미국과 북한 모두 신뢰할 수 있는 보증인이 필요하다. 흔히 중국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한다. 그러나 최근의 무역전쟁에서 나타난 것처럼, 미국의 대중 전략 노선은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중국의 역할보다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허물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가 될 것임을 생각한다면 우리 스스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을 제도적으로 완화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대북 영향력보다 우리의 대북 영향력을 더 커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으로 구성된 동북아에서 우리의 국제정치적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 북한의 존재는 대립과 갈등의 한반도 정세에서는 위협이었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한 거대한 전환의 순간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회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야’(마태 25,13) 할 때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