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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무엇을 담았나 (상)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8-04-17 수정일 2018-04-17 발행일 2018-04-22 제 309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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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매일의 삶 안에서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 번째 권고, 오늘날 성덕의 소명 제시
일상 속 사랑과 자비 실천… ‘성덕의 길’로 나아갈 것 당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5주년인 지난 3월 19일 자신의 세 번째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 서명했다.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이라는 부제를 단 이 교황 권고는 4월 9일 전 세계에 공개됐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도입과 제1장 ‘성덕의 소명’, 제2장 ‘성덕에 대한 두 가지 원수’, 제3장 ‘주님의 빛 안에서’, 제4장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징표’, 제5장 ‘영적 투쟁, 깨어 있음, 그리고 식별’ 등 총 5장 177항으로 구성돼 있는 긴 문서다. 본지는 이 교황 권고의 주요 내용과 그 의미를 상(개괄과 제1장, 제2장), 중(제3장과 제4장), 하(제5장) 3회에 걸쳐 살펴볼 예정이다.

■ 현대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침서

“모든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의 전구와 더불어, 여러분에게 저의 새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보내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모든 이가 각자 일상생활에서 성덕의 소명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고자 이 권고를 작성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공개 하루 전에 작성한 친서 내용이다. 교황은 이 권고를 통해 전 세계 신자들에게 일상의 구체적인 여정에서 하느님 은총의 인도를 따라 ‘성덕’에 이를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교황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서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요청하시며, 그 보답으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창조된 이유인 행복이라는 진정한 삶을 선물로 주신다”면서 “예수는 우리가 건조하고 평범한 신앙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성인이 되길 바라신다”(1항)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권고를 쓴 목적이 “우리 시대에 실질적인 방법으로 성덕의 길을 나아갈 것을 다시금 재확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사랑으로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종종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람’이라고 불린다. 교황은 이번 교황 권고에서 모든 사람이 성덕으로 불렸음을 주창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보편적 성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제시했다.

교황 권고는 교황의 사목적 문서로 회칙보다는 낮지만, 연설이나 강론보다는 높은 권위를 갖고 있다. 이번 권고는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과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에 이은 세 번째다. 「복음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사랑의 기쁨」은 이혼 후 사회재혼자에 대한 영성체 허용을 둘러싼 문제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성덕의 길로 초대하신다’는 단순한 전제에 근거해 「사랑의 기쁨」과 같은 논란을 일으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성덕의 소명

제1장에서 교황은 성덕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황은 “우리 모두는 증거자가 되어야 하며, 증언을 하는 많은 실질적인 방법이 있다”(11항)고 강조했다. 교황은 그리스도를 모범적으로 따른 많은 성인과 순교자 외에도 ‘성덕의 중산층’, 즉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 병든 이, 미소를 잃지 않는 나이든 수도자와 같이 일상에서 신성함을 지키는 수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교황은 평신도를 고려해 친근한 어조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작성했다. 교황은 성덕을 쌓기 위해 주교나 사제, 수도자가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서 직업과 가정을 가지고 여러 가지 많은 압박을 받으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평신도들이 ‘이웃에 사는 성인’으로서 일상생활에서 기도와 복음 묵상 등을 통해 성덕을 쌓도록 독려한 것이다. 특히 교황은 청년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 있는 삶을 지향할 것을 강조하며, “이러한 삶이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물임을 깨닫고 삶을 하나의 사명으로 볼 필요가 있다”(23항)고 권고했다.

교황은 성덕의 의미에 대해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들을 경험하는 것”이라면서 “끊임없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이 부활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특히 소외된 이들에 대한 친밀성, 그분의 가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라면서 성덕의 길로 나아갈 것을 요청했다.

교황은 주님께서는 세례성사를 통해 성스럽고 충실한 백성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성덕을 주셨다(15항 참조)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을 상기시켰다. 교황은 “어떤 상태나 지위에 있든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소명을 받았다”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벽하신 것과 같이 각자의 방법으로 완벽한 성덕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별히 교황은 ‘각자의 방법’으로 성덕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강조한다. 성덕의 양상은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덕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기 때문에 교황은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성덕의 길로 부르시는 지를 식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는 각자 특별한 성소를 받았음을 환기시켰다. 교황은 십자가의 성 요한을 예로 들며, “성인은 단단하고 고정된 규범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법’으로 성화의 길로 나갈 것을 제시했다”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11항)이라고 덧붙였다.

■ 성덕에 대한 두 가지 원수

교황은 제2장 전체를 고대의 두 가지 이단, 즉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의 잘못된 점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교황은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는 교회 초기부터 두 가지 그릇된 성덕의 형태였고, 여전히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현대판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에 대해 자주 언급했으며, 지난 2월에 발표된 신앙교리성 훈령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Placuit Deo)도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는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매우 현실적인 유혹이 된다. 두 이단은 그리스도의 권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상의 힘이나 인간적 노력을 통해 구원을 찾으려는 방도들로, 교황은 신학자뿐 아니라 모든 이가 그러한 위험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일상 언어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교황은 “영지주의의 잘못 가운데 하나는 사랑으로 완덕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고 정보 또는 지식으로 도달하려고 한다는 점”이라면서 “영지주의는 지성을 육신에서 분리시켜, 예수님의 가르침을 차가운 논리로 격하시킨다”고 지적했다.

영지주의가 지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펠라지우스주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의지를 순수하고 완전하며 전능한 것으로 여기고 은총은 거기에 덧붙여지는 것으로 주장한다.

교황은 성덕으로 향하는 신자들을 방해하는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선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는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도록 독려하는 미덕의 위계가 있음을 계속해서 되뇌어야 하며,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는 자선활동이 있다”(60항)고 말했다. 교황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중요할 따름”이라면서 신자들에게 자선활동을 지속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