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0) 슬픈 감동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4-10 수정일 2018-04-11 발행일 2018-04-15 제 309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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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후배 교구 신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보고 싶다고!

그 신부는 몇 달 전에 갑자기 쓰러져 사경을 헤맸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신부가 앓은 병은 생존율이 40%도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적적으로 살았고, 지금은 퇴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 중일 땐 너무 힘들어 한다기에 병문안도 못 가고 걱정으로 발만 동동 굴렀는데…. 이젠 회복한 후 조금씩 걷기 운동과 기초 체력 보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 신부는 나를 만나러 수도원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수도원 대문 앞에 도착했다는 그 신부의 전화를 받고, 나는 방에서 수도원 대문까지 뛰어갔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살이 30㎏ 이상 빠졌고, 얼굴이 너무나도 야윈 그 신부의 모습. 겉으로는 반가워 웃었지만, 내 마음에선 울컥 속눈물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오랜 만에 목이 멘 속울음을 울었습니다.

우리 둘은 근처 조용한 찻집으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니, 약 2시간 정도 그 신부의 이야기를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형, 처음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후 몇 날 며칠을 엄청난 항생제 처방을 내렸나 봐. 그 당시 숨을 쉬는데도 온통 항생제 냄새, 입 안에서도 항생제 냄새, 헛구역질을 하는데도 항생제 냄새. 그런데 형, 내게 놀라운 일이 생겼어. 내가 20살 때부터 계속 심한 무좀에 시달려왔는데, 글쎄 항생제 때문에 무좀이 다 나았지 뭐야. 하하하.”

그 신부가 웃으니 나도 따라 웃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항생제 치료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신부 말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네요.

“그리고 형, 그 항생제가 내 무좀도 치료 해주었지만, 더 놀라운 것이 내 머리 속 나쁜 기억들을 다 가져가 버렸어. 퇴원 후에 가끔 선후배나 동료 신부를 만나는데 그냥 모두가 다 좋아. 아는 신자 분을 만나도 그냥 고맙고 감사한 생각뿐이야. 항생제를 기쁘게 잘 맞았더니 내 머리 속, 내 마음 속 밉고 싫고 하는 그런 감정까지도 다 치료가 됐나 봐!”

나는 후배 신부에게

“너 예전에 잘 놀았던 것 기억하지? 춤하면 춤, 노래하면 노래, 정말 너는 못하는 것이 없었지. 너랑 같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다 웃다가 쓰러지고 그랬는데. 그건 기억나니?”

“형, 정말 내가 그랬어? 그런데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아. 오로지 하나 내게 중요한 것은 십자가였어. 사실 병원에 입원해서 혼자 한 달 이상을 입원해 있는 동안 항생제만 수도 없이 맞아서 힘겨웠는데, 나 역시 병실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그런데 오로지 한 가지, 내가 누워있던 침대 맞은 편 벽에 걸린 십자가, 바로 십자가가 하나 있었는데 사경을 헤매든 어떻든 간에 눈만 뜨면 십자가를 눈으로 보는 것만 할 수 있었지. 그 당시는 어떤 작은 소리를 들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항생제로 인해 그 어떤 냄새든 맡는 것조차 힘들었고, 먹는 것은 더욱 더 고통스러웠는데. 그런데 형, 오로지 그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만 유일하게 바라봤지. 그런데 십자가에 계신 주님 역시 그냥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봐 주시더라. 그래서 힘들 때마다 그 십자가만 바라보면서 한 순간 한 순간을 지냈던 것 같아.”

2시간 동안 나는 좋은 피정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그 신부가 들려 준 감동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살아있는 한 순간 순간이 하느님 은총이라는데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 신부가 가고 나서,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마도 너무나 슬픈 감동의 이야기를 듣고 그만…, 눈물만 그렇게 흘렸나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