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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주년 추념미사와 행사 종합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이창준
입력일 2018-04-10 수정일 2018-04-11 발행일 2018-04-15 제 3090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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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의 역사, 화해와 상생의 반석으로 거듭나다
서울 명동대성당서 주교단 공동집전으로 미사
억울한 영혼들 달래고 역사 바로 세우기 강조
국민문화제 참석자, 진상규명 촉구에 한마음
제주 전 본당 추모미사… 어린이 위한 행사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이 70주년을 맞아 지역과 이념을 초월해 전 국가적, 국민적 역사로 자리매김 했다. 서울과 제주에서 거행된 추념미사와 행사 소식을 정리했다.

■ 한국교회와 사회 중심으로 논의된 4·3

제주교구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위원장 문창우 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배기현 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기헌 주교)가 4·3 70주년을 기념해 발족한 4·3 범국민위원회와 연대해 제정한 4·3 70주년 특별 기념주간(4월 1~7일)을 끝내며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추념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뒤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민문화제가 열렸다.

4월 7일 오후 3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가 주례하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등이 공동집전한 명동대성당 추념미사는 4·3을 제주라는 지역적 테두리를 벗어나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가슴 아파하고 화해와 상생을 모색한 기념비적 자리였다.

한국사회 시민의식의 공유 공간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3 70주년 국민문화제 역시 4·3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전국 각지의 시민들과 종교인, 예술인, 청년과 학생들이 동참했다는 데서 4·3에 대한 논의를 한국사회 중심으로 옮겨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희중 대주교는 4·3 70주년 추념미사 인사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한 유다인 학살의 역사를 언급하고 “용서하라. 그러나 기억하라”고 말해 화해와 상생의 의미, 역사 바로 세우기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강우일 주교 “4·3은 ‘항쟁’으로 불러야”

강론을 맡은 강우일 주교는 “1948년부터 1954년까지 6년에 걸쳐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젖먹이와 임산부, 노인까지도 무차별 학살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이 그렇게 무참하고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하느님은 어째서 그런 비극을 허락하셨는지 의문을 가졌고,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모습에 가슴을 쳤다”고 안타까워했다. 강 주교는 “지금까지 우리는 4·3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지만 이제는 ‘항쟁’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16년 촛불이 있기 전 1987년 6월 항쟁이 있었고, 그 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 이전에 3·1운동, 그 이전에는 동학혁명이 있었다”는 역사적 맥락을 근거로 4·3을 항쟁으로 정명(正名)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 주교는 4·3을 항쟁으로 이름 붙인 뒤 “3만여 명의 희생은 결코 개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순교자들의 행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명동대성당 제주 4·3 70주년 추념미사에는 제주교구 신자 250명이 참례했다.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고용삼(베네딕토) 회장은 “4·3이 70주년을 맞이한 올해야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비극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 지으면 아무런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4·3 70주년 이후의 과제에 대해 “당시 4·3을 이념대립으로 몰고가면서 희생자를 양산한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며 진실규명을 주장했다.

명동대성당 제주 4·3 70주년 추념미사에 이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문화제에는 4·3의 아픔이 씻기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였다.

강우일 주교와 문창우 주교 등 제주교구 사제단과 평신도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원희룡 제주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힘을 기울여 온 정관계 인사들, 안치환과 전인권 등 대중가수들, 판소리 배일동, 정가 김나리 등 우리 전통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4월 7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제대 가운데) 주례, 한국 주교단 공동집전으로 제주 4·3 70주년 추념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제주교구 제공

■ 4·3 희생자 유가족 응어리진 한 풀어

국민문화제에는 4·3 희생자들의 유가족들도 참석해 70년 동안 가슴에 묻었던 응어리진 한을 풀어놨다.

4·3 첫 해 제주도 애월읍 애월리에 살다 아버지를 잃은 박부자(데레사·77·서울 창동본당)씨는 “제가 8살 무렵이던 1948년 집으로 찾아 온 경찰들이 아버지를 끌고 가는 장면이 그분을 본 마지막이 됐다”며 “이후 오랜 세월 아버지의 행방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바다에 수장돼 돌아가셨다거나 광주형무소에 수감돼 총살됐다는 등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도 아버지가 어떻게,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어 안타깝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얼마나 어린 딸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어 하셨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인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씨는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도를 찾아 4·3에 가해진 국가 폭력을 사과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해 참으로 감사하다”며 “70년 세월 동안 억울한 마음을 어디 가서 풀어놓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국민들이 4·3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4·3은 70주년인 올해가 끝이 아니라 이제야 시작되는 것”이라고 앞으로 해결할 과제가 더 많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박씨의 마지막 말처럼 이날 광화문 국민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4·3 특별법 제정’, ‘미국 사과’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4월 7일 추념미사 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4·3 70주년 국민문화제 중 전국에서 모인 참석자들이 4·3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제주교구서도 추모미사와 행사

4·3의 장소적 공간인 제주교구에서는 4월 3일 모든 본당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추모미사를 일제히 봉헌했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4·3 70주년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도 제주교구 청소년사목위원회(위원장 김석주 신부) 주관으로 4월 8일 제주 신성여중 체육관에서 열렸다. ‘또한 그들의 영혼과 함께’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각 본당 어린이, 교리교사, 학부모 등 1100여 명이 참석해 4·3 스토리텔링, 십자가의 길 퍼포먼스 등을 진행했다.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4·3 70주년 당일인 4월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 권력이 자행한 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약속했다. 대통령이 4·3에 공식 사과하고 추념식에 참석한 것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4·3 당시 국가권력의 과오를 처음으로 사과했고 2006년 4월에는 역대 대통령 최초로 4·3 추념식에 참석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식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하고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4·3을 아직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국민들이 일부 있는 점도 염두에 둔 듯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교구 청소년사목위원회가 4월 8일 신성여중에서 마련한 ‘4·3 70주년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 중 십자가의 길 퍼포먼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이창준 제주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