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수원가톨릭대학교(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4-10 수정일 2018-04-10 발행일 2018-04-15 제 309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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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신자… 사제 양성 필요 
한국 4번째 신학교 왕림에 설립

1983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기공식.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가로수 길을 따라 오른다. 오르막의 끝에 주황색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교구 성소의 못자리 수원가톨릭대학교다.

1970년대 후반부터 교구 신자 수는 수도권 인구 증가 추세와 신자들의 적극적인 선교 덕분에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반면 새 사제의 수는 적어 교구 사목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는 매월 1회 ‘사제 성소의 날’을 열고 성소계발과 사제양성에 박차를 가했지만 어려움이 크게 해소되진 않았다.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남수 주교는 성소계발과 사제양성의 시급함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교구 대신학교 건립을 구상했다. 198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대신학교 건립에 관해 논의했지만, 비용과 교수진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하지만 1982년, 한국교회 사제성소자 수가 기존의 대신학교 정원을 몇 배 초과했다. 게다가 서울관구의 경우 신자 수 대비 신학교 신입생 모집인원이 대구·광주관구에 비해 낮은 상황이었다. 서울관구 주교들은 1981년 서울 대신학교 기숙사와 교사 증축을 준비해오고 있었지만, 현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서울관구 내에 별도의 대신학교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했다. 결국 1982년 춘계 주교회의에서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4신학교 설립안이 통과됐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수원교구가 결정하기로 정했다.

신학교 성당 앞에는 갓을 쓰고 있는 김대건 성인의 성상이 세워져 있다. 왕림 지역은 예로부터 ‘갓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다. ‘갓등이’는 갓을 쓴 등불이라는 의미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사제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제라는 의미의 암호로 ‘갓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왕림 지역은 수원과 충청도를 잇는 좁은 산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배를 타고 입국하는 선교사제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 됐고, 이곳 교우촌은 ‘갓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또 갓등이 교우촌의 신앙을 이어받은 이들이 설립한 왕림본당은 교구의 첫 본당이자 교구 신앙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자리하게 된 것도 그러한 의미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교구는 1982년 7월 1일 참사회를 소집해 한국 제4신학교의 위치를 논의했다. 후보지로는 왕림, 천진암, 성라자로마을 등이 거론됐지만 최종 왕림, 즉 갓등이로 의견이 모아졌다. 교구사적인 의미도 깊을 뿐 아니라, 신학교가 들어설 만큼 충분히 넓고 환경이 깨끗했고 대도시와의 접근성도 좋아 신학교를 설립하는데 최적의 조건이었다. 교구는 1983년 3월 교황청에서 수원가톨릭대학교의 설립 인준을 받고 그해 4월 대학 본관을 짓기 위한 기공식을 열었다.

1984년 수원가톨릭대학교 첫 신입생 입학식.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