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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개나리’ / 노중호 신부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n
입력일 2018-04-10 수정일 2018-04-10 발행일 2018-04-15 제 309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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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가장 아플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하셨습니다. 침묵 속에서 십자가 속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서야 ‘아버지와 제가 하나이듯 이 사람들도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의미를 깨닫게 됐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2000년이 넘도록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정신을 살고 있습니다.

‘천주교 믿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구역장이라며, 상임위원이라며….’ 봉사자들이 복음을 삶으로 살지 못해 욕도 먹고, 그 모습에 실망하고 상처받아 떠나는 교우들도 보게 됩니다. 교우들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신학교 입학 전에 형 신부님이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신학교는 천사들만 사는 곳이 아니야.” 맞습니다. 이기심과 교만과 욕심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나쁜 습관들이 공존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쁨 속에서 부서지고 깨져 선함을 찾아가는 신앙의 못자리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먼저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그렇게 정화의 시간 이후에 약속의 땅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과 본당에서 일구어 가는 좋은 땅도 이렇게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통한 영양분도, 수분도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주십니다. 우리가 잘해야 할 것은 가지로서 갈라져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잘못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지만 베드로처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라져 나갔기에 더 큰 잘못이었습니다. ‘너희는 내 안에 머물러라’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있어야 할 곳은 예수님 당신밖에 없음을 늘 고백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며 미사를 마치고 교우들과 인사하고 성당 담을 보았는데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어르신 한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개나리는 참 신기해요. 가지를 꺾어서 땅에 심으면 뿌리도 뻗고 그대로 잘 자라나요.” 개나리를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2000살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직접 뵌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나의 삶의 자리에 뿌리를 뻗고 꽃을 피우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양심을 통해서, 자연 만물을 통해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상재상서」를 통해 정하상(바오로) 성인이 벌써 200여 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부활을 통해 가지들을 완전히 믿고 파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왜 아직도 빈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환호에 차서 말하였듯이 ‘라뿌니’ 스승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에서 생명이 넘치는 삶을 마련하셨는데 아직도 근심 걱정으로, 죽음으로 무덤에 갇혀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죽은 듯 갇혀 있는 달걀은 어미 닭의 따뜻한 온기와 함께 중요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안에서 병아리가 쪼아 살고자 하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병아리도 개나리도 다 알려줍니다.

알렐루야! 노오란 개나리꽃이 아름다운 오늘입니다.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