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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에 만난 사람] ‘발달장애인 마을공동체’ 대표 최경혜(막달레나)씨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04-10 수정일 2018-04-10 발행일 2018-04-15 제 309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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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편견 없는 따뜻한 교회되길”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28세 딸의 엄마
인지·학습 능력 발달 시기 교육 지원 중단돼
현실적인 문제 해결 위해 ‘마을공동체’ 조성
“스스로 방법 찾는 부모 위한 정책 있었으면”

최경혜씨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게 소원이에요.”

“소원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어떤 엄마가 자신보다 자식이 먼저 죽기를 소원하는 것일까? 조금은 이상한 ‘엄마의 소원’은 2005년 개봉한 영화 ‘말아톤’에 등장한 대사다.

영화 속 초원(조승우 분)은 발달장애를 앓는 청년으로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외모는 멀쩡하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싱글벙글 웃기만 한다. 언제나 초원이 곁을 지키며 모든 일을 함께해주는 사람은 엄마(김미숙 분)다. 그러나 엄마가 죽으면 초원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영화 말아톤은 개봉 당시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그러나 영화 속 엄마의 헌신에 그저 감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인 마을공동체’ 대표이면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발달장애인부모회 회장을 역임한 최경혜(막달레나·서울 대림3동본당)씨는 스물여덟 된 딸의 엄마다. 보통의 딸들에게 스물여덟 나이는 너무 사랑하고 동시에 너무 미웠던 엄마로부터 서서히 독립해가는 시기다.

하지만 최 대표의 스물여덟 딸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세계에 머물러있다. “제 아이는 어느새 스물여덟이 됐지만 자신이 위험에 처해도 알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나 최 대표는 발달장애인 부모 가운데 자신보다 더 힘든 부모들이 많다고 말한다. “자폐성 장애로 자해하거나 돌발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엔 부모들이 단 한 순간도 아이 옆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최 대표는 4월 2일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청와대 앞에서 삭발하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무척 아팠다고 한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같을 거예요. 부모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을 울렸던 ‘말아톤’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바뀐 것은 없다. 2014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지금까지도 구체화된 정책과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국가는 만 18세까지 교육이나 재활 훈련 등을 지원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모든 재활 지원이 끊기고 모든 것은 부모의 책임이 된다.

문제는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바로 자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은 일반인과 달리 만 19세가 돼야 조금씩 인지와 학습 능력을 터득하고 발달단계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교육이 절실히 필요해지는 시기부터 정작 교육 지원은 중단되는 것이다.

갈 곳 없고 자립할 수도 없는 발달장애인들을 평생 돌보는 것은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부모가 늙어 갈수록 발달장애인의 몸은 점점 자라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더 힘들어진다.

최 대표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는 물론 교회가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교회 안에서조차 편견에 부딪혀 냉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의 품 안으로 발달장애인들을 품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발달장애인 마을공동체’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부지를 매입했고 곧 건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다양하겠지만 저희처럼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부모들을 지원하는 정책도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28년 내내 딸의 곁을 지키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집회를 다니고 농성을 이어가던 힘겨운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장애를 가진 딸의 엄마가 된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었다”고 말한다.

“힘겹게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장애인들과 그 부모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합니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