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코제트의 물동이를 들어준 장 발장 / 박지순 기자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8-04-03 수정일 2018-04-03 발행일 2018-04-08 제 3089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빈민사목위원회가 4월 1일 오전 서울 강남역 삼성 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봉헌한 이날 미사는 삼성전자 산업재해 희생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 폐암, 뇌종양, 림프종 등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18명이나 된다.

고(故) 황유미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화학약품을 다루는 일을 하다 백혈병에 걸려 2007년 23세의 피지도 못한 꽃으로 세상을 떴다. 삼성전자 직업병 희생자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아버지 황상기(63)씨는 이날 미사에서 딸을 잃은 슬픔과 삼성의 부도덕한 처사에 피 끓는 울분을 터뜨렸다. 딸의 사망이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된 2014년까지 7년간이나 황씨가 삼성을 상대로 벌인 싸움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이제야 그 아픈 사연을 알아서 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많았다.

기자는 황씨의 격정적인 토로를 들으며 「레 미제라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장 발장이 죽은 여인 팡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823년 늦가을 파리 인근 몽페르메이유로 찾아가 팡틴의 딸 코제트를 첫 대면하는 장면이다. 탐욕스런 테나르디에 부부의 하녀가 돼 갖은 고생을 하던 코제트는 캄캄한 밤에 7살 소녀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물동이를 나르고 있었다. 장 발장은 살며시 다가가 물동이를 들어줬고 코제트는 물동이가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코제트의 물동이만큼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많다. 그들과 연대해 십자가를 함께 질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