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의 부활 / 손서정

손서정
입력일 2018-03-27 수정일 2018-04-26 발행일 2018-04-01 제 3088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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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라는 단어 자체에 꽂혀 무조건 두 아이를 데리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평화공부를 하러 떠난 어찌 보면 대책 없는 엄마다. 더블린에서 학업을 마치고 다시 인턴 근무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떠날 때였다. 친구들이 송별회를 마련해 아쉬운 인사를 나누던 중에, 다음 목표지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특별한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만큼 계획적이지도 똑똑하지도 않다. 그저 주어진 내 삶에 충실하며 흘러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내 말을 듣더니 친구들이 한결같이 “Go with the flow!”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순리와 흐름을 따라 살아간다는 의미의 어구가 맘에 들기도 했지만, 나에게 그 흐름은 주님의 이끄심이기에 주님을 따르려는 내 삶의 여정을 간결하게 정리해 주는 말이기도 했다. 학업이나 어떤 일의 중간에 있을 때는 그 안에서 바쁘게 살아가느라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맺음의 자리를 결단할 시점이 오면 고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렇게 방향의 전환이 필요함을 느낄 때, 떠나야 할 시점과 시작할 시점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익숙한 틀을 박차고 나와 행동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이때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믿고 따르는 충직함과 굳셈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덧 사순 시기를 지나 부활을 맞이한다. 나에게도 이 시기는 기존의 틀에서 나와 새로운 부활로 향해야 할 때다. 지금 시점에서 나는 스스로의 내실을 다지기로 결심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후 부활하시기 전까지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무덤에 묻혀 계셨다. 우리의 삶도 매일매일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는 여정이지만, 나의 모자라고 이기적인 자아를 땅속에 묻고 썩혀서 다시 새싹으로 부활하기까지는 몇 달이, 아니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부활의 날을 기다리는 시절은 마냥 지루한 땅속의 기다림이 아니라 하루하루 흙내가 달라지고 온도가 변화하는 작고 신선한 경험들이 가득한 매일의 활기찬 부활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부활이 합해져야만 새로운 싹을 피워 열매를 맺는 참된 부활이 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민족이 분단되고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반목의 헤어짐과 희망의 만남을 거듭하던 여정이 마냥 헛된 발걸음은 아니었으리라. 평화의 부활을 향한 매일의 몸부림이고 고민이었다. 그간의 노력과 모든 것들이 모여 마침내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점점 커지는 요즘이다.

나는 지금도 미사를 드릴 때 복음이나 보편지향기도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나오면 가슴이 울컥하고 벅차게 설렌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평화를 향한 일상의 노력으로 평화의 부활에 보태는 한걸음이 되리라. 평화를 향한 응원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애쓰는 모든 분들과 함께 평화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2018년 주님 부활 대축일과 함께 모두가 평화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손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