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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흙’ / 노중호 신부

노중호 신부rn(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
입력일 2018-03-27 수정일 2018-03-27 발행일 2018-04-01 제 308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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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여라.’ 창세기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흙의 먼지처럼 미천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흙의 먼지를 빚어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가장 비천한 존재가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오묘한 섭리의 시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잊어버린다면 겸손은 어느덧 사라지고 교만만 자리 잡게 됩니다.

흙은 이 세상에서 있어야 할 곳을 자꾸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으니 흙길 보다는 아스팔트로 포장했습니다. 경운기가 지나가고 들풀들이 한가득이었던 시골길마저도 시멘트 길로 덮여 갑니다. 흙과 나무의 자리, 숲은 사라지고 회색 빌딩으로 빼곡한 자리를 도시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편의주의에 빠져 온 대지의 평안함이 사라지는 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한 처음 흙이 있었고, 우리는 흙이었습니다.

흙은 비를 받아들일 줄 알고, 햇빛의 소중함을 알고, 생명의 움트는 모든 자리에 함께 합니다. 우리는 믿는 이들, 빛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 세상의 모진 풍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도 흙에서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씨앗의 비유에서처럼 처음부터 좋은 땅이 없다는 것도 받아들일 줄 압니다. 그래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돌도 치울 줄 압니다. 세상의 근심 걱정이라는 가시덤불을 걷어내어 숨을 막지 않도록 늘 준비하는 삶도 살 줄 압니다. 그렇게 좋은 땅을 일구어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의 영성 생활에 있어서도 지금의 환경처럼 흙이 사라지는 것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빨리해야 더 많은 것을, 경쟁에서 내 것을 얻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기다림 없는 아스팔트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것밖에 못해?,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이해심 없이 마치 자신이 하느님이 된 것처럼 판단하고 비판하는 심판자가 되어 철근 콘크리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흙이 좋습니다. ‘빨리 빨리’가면 그냥 빨리 갑니다. 그런데 흙길을 가면 아주 작은 야생화도 나 여기 있다고 손짓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 중에 ‘이 한 몸 꽃이면 온 세상 봄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봄이 안 오는가? 왜 마련되어있지 않은가? 탓하기 보다는 흙으로 돌아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여정을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다시 시작하여 꽃이 되면, 시나브로 옆 사람도 꽃이 됩니다. 온 세상이 꽃밭입니다. 그러면 봄입니다. 우리의 봄이시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겨울을 살고 있는 토마스 사도에게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보이는 것만 믿게 됩니다. 예수님 마음처럼, 온유, 따뜻하고 부드러운 땅,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 다시 흙에서부터….

노중호 신부rn(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