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27) 맛집 찾기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3-20 수정일 2018-03-20 발행일 2018-03-25 제 308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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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네 동생이 나를 제주공항으로 데려다 주면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하고 찾아 나선 제주 향토 음식인 몸국 맛집. 그런데 어렵게 찾아간 몸국 맛집에서는 그날따라 돌잔치 행사를 하는 중이었고, 일반 손님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 묘한 상황을 정리하고자 그 동생은 음식점 사장님에게 우리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러자 몸국 두 그릇 주문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 그 동생은 밖에 잠시 나가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밖에서 하는 통화 소리가 식당 안까지 들렸는데, 이 음식점을 추천해 준 친구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양이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그 동생은 비행기 시간이 괜찮은지를 물었고, 나는 몸국이 나오면 밥 말아서 후루룩 들이키면 한 끼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드디어 몸국이 나왔는데 반찬으로 김치와 멸치가 곁들여 나왔습니다. 누가 봐도 대충 준비해서 나온 음식이라는 것이 표가 날 정도로 성의가 없었습니다. 사실 몸국에는 잘 익은 깍두기와 부추김치를 곁들여야 제 맛인데 그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본 그 동생은 사장에게 가서 뭐라고 하니, 그제야 깍두기 김치와 다른 반찬 한 가지가 더 나왔습니다.

미지근한 몸국과 거의 식은 밥. 그 동생은 식사할 생각도 안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신부님, 이 집에서 드실 겁니까?”

“허허. 그래, 먹기는 해야지. 그런데 몸국이 어찌 좀 미지근하게 나왔어. 그러니 돼지고기 비린내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지.”

“신부님, 우리 이거 먹지 말고 얼른 공항 식당에 가서 다른 거 먹을까요?”

“아니, 뭐. 괜찮아. 맛있게 얼른 먹자.”

식당에선 돌잔치가 계속 진행됐고, 한 쪽 귀퉁이에 앉은 우리는 처량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 동생은 밥 한 숟갈에 김치를 먹더니, 기어이 수저를 내려놓았습니다. 몸국에는 손도 대지 않고. 그래도 나는 그 동생 마음이 상할까봐 꾸역꾸역 한 그릇을 다 먹었습니다. 사실 몸국 먹자고 한 사람이 나였기에 미안한 마음을 감추느라 식은 몸국을 억지로 먹었던 것입니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 공항으로 가는데, 우리 둘 다 말이 없었습니다.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기는 한데 왜 미안한지는 모르겠고. 그런데도 미안하기는 하고, 뭐 이런 감정이었습니다. 가까스로 비행기 시간에 맞춰 차는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말없이 허그를 하고 악수를 한 후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는 순간 나는 그 동생에게,

“그 집을 맛집으로 소개시켜 준 친구에게는 뭐라 하지 마라. 알겠지?”

동생의 표정은 당장 차를 끌고 그 친구에게 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더 했습니다.

“그 집, 맛집은 맛집이었어. 뭘 먹느냐 보다는 누구랑 먹느냐가 우리에게 진짜 맛집이잖아. 너랑 오랜만에 식당에 앉아서 밥도 먹고, 정말 좋은 추억 만들었으니 맛집은 맛집이었어. 알겠지?”

그제야 그 동생은 미소를 지으며, 잘 올라가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맛집은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 아니라, 소중한 벗이랑 한 끼를 감사하게 먹고, 그 먹은 만큼의 기쁨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맛집은 찾아나서는 곳이 아니라, 함께 좋은 대화를 나누며 좋은 마음을 나누는 곳입니다. 그 순간 그 곳은 진정한 맛집인 것입니다.

아무튼 그 동생이 모르는 사실은, 그 날 공항 검색대를 지나서부터 배가 살살 아파 이내 화장실로 달려갔다는 겁니다. 나도 그 동생이랑 몸국을 먹으며 엄청 긴장했나 봅니다, 하하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