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일치 / 손서정

손서정(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8-03-20 수정일 2018-03-20 발행일 2018-03-25 제 308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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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한 친구와 서울 명동을 산책하는 중이었다. 나는 고요한 명동성당을 한 바퀴 둘러 나오면서 성호경을 긋고 잠깐 기도를 했다. 그걸 본 친구가 대뜸 물었다. “누구한테 기도하는 거야?” 순간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면 그냥 대답을 했겠지만 당시에는 잠깐 숨을 고르고 대화를 시작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국내 명문대학으로 불리는 대학원의 기독교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상태였고, 그리스도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그리스도교 교육이 얼마나 기본을 무시하고 그저 양분화시킨 세상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하나의 경험이었다. 그리스도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과 생애를 따르는 종교이며, 역사적으로 갈라졌지만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추구함은 당연히 인지해야 할 교리다. 굳이 신앙인이 아니라도 인터넷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누어진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자신이 속한 교회의 이론과 실체만을 강조했으면 그런 틀을 지니게 됐을까 많이 안타까웠다. 그리스도교의 평화활동을 지지하는 나로서는 각 교계의 아름다운 노력과 실천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되면 못내 가슴이 쓰리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기도회, 협의체 구성과 국제회의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데 있어서 서로 다른 한편에서 하고 있는 활동은 알지 못한 채, 우리끼리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은 더욱 아쉽다.

개체교회 활동이 시급하다 보니 더 큰 틀로 넓혀 나갈 여력이 없는 탓도 있지만 각자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화합이 종종 미뤄지기도 한다. 천주교 내 교구 간에도 타자를 초대하고 확장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은 결여되기 십상이다. 교파를 초월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만의 일치를 넘어서 전 세계의 다른 체제와 이념, 이권을 넘어선 평화를 향한 열정과 적극적인 환대가 바탕이 돼야 한다.

모두가 외치는 목소리가 하나일 수는 없다. 그러나 다름을 넘어 만나고 알아가며 다양함을 포용하는 과정, 그 과정이 바로 일치를 향한 평화의 여정이다. 그리스도교를 넘어 평화를 외치는 모든 종교 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여성과 청년, 장애인과 어린이를 비롯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구체적인 체계를 갖춰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름에도 만나고 조율해 가는 과정을 통해 남과 북, 그리고 북한과 미국이 이제야 다시금 전쟁을 넘어서 평화를 향해 가고 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의 역할은 화합과 일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합해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포용하고 화합하는 과정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평화가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다

손서정(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