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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 김종환

김종환 (암브로시오·62·안양대리구 과천본당)
입력일 2018-03-20 수정일 2018-03-20 발행일 2018-03-25 제 308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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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35년 동안 함께 삶을 나누는 지체 장애인 모임인 바오로 선교회가 있습니다. 복지 사각 지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들이 모임이죠. 바오로 선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번 월례미사를 참례하고 점심을 먹고 준비된 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모임과 관련해 ‘수요 사랑방’이라고 해서 특히 갈 곳이 없어 집안에만 있는 가족들(선교회 회원)을 한 달에 2번, 때에 따라서는 매주 만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사순시기를 맞아 십자가의 길을 하면 어떠냐”고 엠마 회장님이 말씀하시기에 제가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하자, 회장님은 저에게 십자가의 길 묵상 글을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직접 십자가의 길 묵상을 하며 함께 나눈 경험이 있어 “자신 있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기도를 하고 묵상을 쓰기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문득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나서 쓰기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사랑방 모임에 참석해 오늘의 십자가의 길 묵상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 “각 처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하며 묵상을 나누자”고요.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난 언제 사형 선고를 받았을까요?”라고 말하자 한 여성 회원이 갑자기 울먹이며 “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하반신을 쓰지 못하고 평생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된다는 의사의 말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그 순간”, “저의 외적인 모습을 보고 피하며 다르게 보는 눈초리가”, “별생각 없이하는 ‘야 이 병신아’라는 말이”, “가족들이 제 모습을 창피해한다는 생각이 들 때”, “더 이상 걸어 다니지 못하고 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등 자신에게 무엇이 ‘사형 선고’였는지를 묵상하고 나눴습니다. 이렇게 각 처마다 자신과 주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눈물로 14처까지 다 마치고 한동안 모두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닦고 있었습니다.

매번 십자가의 길을 할 때 난 정말 무엇을 묵상하고,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바라며 했는가를 성찰하게 됐습니다. 올해 성주간에는 문자화된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 주님의 고통과, 수난으로 이루시는 부활의 기쁨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이웃과 함께 나눌 것을 다짐했습니다. 손에 든 묵주를 꼭 잡으며, 지체 장애를 가진 바오로 선교회 회원들을 향해 남모르게 따듯한 미소를 살짝 보내봅니다.

김종환 (암브로시오·62·안양대리구 과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