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26) 자연에 대한 폭력 /박그림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03-13 수정일 2018-03-13 발행일 2018-03-18 제 308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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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눈을 녹이면서 온 산을 촉촉이 적시면 골짜기에 물이 넘치고 산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다. 가지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나무를 깨우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연둣빛 이파리가 터져 나오면서 봄은 무르익는다. 자연의 흐름은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일 없이 이어지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을 품고 기른다.

우리들도 다르지 않아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자연을 거스를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되는지 모른다. 때론 부드럽게 다가와 말을 거는 것처럼 삶 속으로 스며들어 기쁨으로 가득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와 삶을 흔들어 대며 다시는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이 쉽고 편안함을 따르면서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더욱 많아지고 오히려 삶이 불편해지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연에 드는 일조차 쉽고 편안한 것을 찾아 산길마다 나무 데크며 계단으로 뒤덮였고 어머니의 몸인 대지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만 되는 것처럼 보여 낯설다. 발걸음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대지의 부드러움도 잊은 채 봄바람에 흔들리는 산풀꽃들의 앙증맞은 모습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정상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길 뿐이다. 그렇게 무디어진 마음은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잊고 사는 삶은 삭막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작은 것에서 흐트러진 마음은 어느 것에서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은 너무도 뻔한 일이 아닐까. 인공시설물로 덮여가는 산길이며 정상부에 대피소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대형 건축물은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무너트리는 자연에 대한 폭력이지만 때만 되면 삼겹살 굽는 냄새로 뒤덮이는 일 또한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나무를 자르고 숲이 사라지게 만드는 일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지만 산풀꽃들의 흔들림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일도 마찬가지다. 깊이 팬 산길에서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지만 나무 데크를 걸으면서 편안함에 빠지는 일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산길에서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일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지만 음악소리와 핸드폰 소리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무너지는 산길에 수많은 등산객의 발길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지만 두 개씩 들고 다니며 찍어대는 스틱도 폭력이기는 마찬가지다. 일일이 따지기에도 벅찰 만큼 많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은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조차 없는 어설픈 등산객일 뿐이다.

설악산의 아름다움은 상처와 아픔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상처를 밟고 오르내리는 이기적인 모습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 멀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자연을 훼손 하는 일은 어떤 형태의 것이라 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폭력이며 폭력은 곧 더 큰 보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