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 성당 기공으로 돌아본 신나무골 성지

박원희 기자
입력일 2018-03-13 수정일 2018-03-13 발행일 2018-03-18 제 308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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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복음화의 전초기지… 대구 첫 본당 한옥성당 재현한다

200여 년 전 경상도 지역 전교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했던 신나무골 성지(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소재)가 지난달 말 새단장 공사에 들어갔다.

1901년 화재로 소실된 대구본당(현재 계산주교좌본당) 한옥성당을 첫 본당 자리에 재현하고 로베르 신부와 보두네 신부 등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제들이 머물던 사제관을 복원해 영호남 교회의 초석이 된 발자취를 재조명한다는 계획이다. 신나무골 성지 3차 개발을 시작하며 신나무골 성지의 역사와 의미를 돌아본다.

■ 영호남 교회 초석 된 ‘신나무골 성지’

예부터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신나무’가 많이 자라 신나무골이라 불린 이곳은 교통의 요지였다. 대구 외곽에 자리했지만 읍성을 하루거리로 다닐 수 있었고, 인접한 낙동강을 이용하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곳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이유로 신나무골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신나무골에는 많은 신자들이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샤스탕 신부와 ‘땀의 증거자’ 가경자 최양업 신부도 신나무골을 찾아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한 기록이 있다. 관아의 눈을 피해 지내야만 했던 신자들에게 신나무골은 특별했다. 산골이 깊어 피신하기 적당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등 계속된 박해에 많은 신자들이 대구 감영으로 압송되자, 그들의 가족들이 대구 읍성과 멀지 않은 신나무골에서 지내며 옥바라지를 했다.

1882년 경상도 지방의 선교 책임을 맡은 로베르 신부(Achille Paul Robert·한국명 김보록·1853~1922)도 대구와 인근의 신자들을 찾을 때면 신나무골에 며칠 머물면서 성사를 집전하고 인근 교우촌 신자들을 돌봤다. 경상도 전역과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 일부를 순회하며 전교했던 로베르 신부는 1885년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마련하고 대구본당(현재 계산주교좌본당)을 세운다. 대구 읍성을 비롯해 경상도 전역을 관할하는 전교 전초기지를 마련한 것이다. 선교사들에게 신나무골은 대구 읍성 신자들을 돌보고, 전교를 위해 영호남 각지로 나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지리적으로 대구 읍내에서 김천과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로 가는 대로변에 있었고, 인접한 낙동강에서 배를 타면 경상도 북부지역은 물론이고 부산과 경남지방, 경상도 전역으로 전교를 다닐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1888년 로베르 신부가 대구본당을 새방골(대구 상리동)로 옮기며 본격적인 대구 읍성 전교에 나서자, 보두네 신부(Francois Xavier Baudounet·한국명 윤사물·1859~1915)가 신나무골에 부임했다. 보두네 신부는 신나무골에서 지내며 조선말과 풍습을 배우고 전주로 떠나, 1889년 전주본당(현재 전동본당)을 세운다. 후임 죠조 신부(Moyse Jozeau·한국명 조득하·1866~1894)도 신나무골에서 1년간 지내며 부산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죠조 신부는 1889년 부산본당(현재 범일본당)을 설립했다. 이밖에도 파이야스 가밀로 신부(Camillus Cyprien Pailhasse·한국명 하경조·1868~1903)는 신나무골에서 지내다 왜관에 가실본당을 세우고 성주, 선산, 문경, 상주, 군위, 안동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을 돌며 신자들을 돌보고 전교에 힘썼다.

왼편 한옥이 로베르 신부가 대구에 세워 1898년 6월 말 완공된 기와 십자형 대구성당. 오른쪽 건물은 로베르 신부가 세운 교리학교인 ‘해성재’ 건물.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로베르 신부가 본격적인 대구 읍성 전교에 나서면서 1895년 새방골(대구 상리동)로 옮긴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새 단장하는 신나무골 성지

지난달 28일 시작된 신나무골 성지 개발은 기존 복원 사업으로 개발해 기념했던 로베르 신부 사제관과 대구본당 초가를 철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자리에 로베르 신부가 자리 잡은 당시를 최대한 재현해 낼 계획이다.

이번 성지 개발은 신나무골 성지를 담당하고 있는 서준홍 신부(대구대교구 신동본당 주임)가 이끈다. 서 신부는 오랜 기간 신나무골과 관련된 각종 사료와 다양한 증언들을 정리해 왔다. 또 전국의 많은 성지를 순례하며 한국교회 역사와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다녔다.

2월 28일 열린 기공식에서 조환길 대주교는 “신나무골은 교구의 첫 본당이 시작된 곳이자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의 무덤이 있는 옛 교우촌 마을로, 교구로서는 아주 중요한 곳”이라며 “그동안 성지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새롭게 추진되는 개발 사업에 신자들이 힘을 모으고, 앞으로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새 단장하는 성지에는 로베르 신부가 현재 계산주교좌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지었던 한옥성당(1901년 화재로 소실)을 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당 외벽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주제로 한 김옥수 신부(부산교구) 작품을 설치한다. 본당과 교구의 첫 성당이었지만 지진에 의한 화재로 소실된 역사를 본당이 시작됐던 곳에 다시 세우고 그 의미를 순례자에게 전한다는 계획이다. 성당 바로 옆에는 로베르 신부와 3명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머물던 초가를 올려 사제관도 복원한다. 이밖에도 순례하는 신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

서준홍 신부는 “신나무골 성지는 경상도 전역과 호남 일부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의 삶을 묵상하는 뜻깊은 곳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며 “많지 않은 자료이지만 당시의 모습과 의미를 최대한 살려 자연친화적으로 성지를 복원·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신부는 신나무골 성지를 중심으로 하는 성지순례 코스와 순례자 미사,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제공한다. 성지안내봉사자를 양성해 성지를 찾은 순례자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도 갖고 있다. 신나무골 성지 3차 개발은 내년 이맘때 마무리 된다.

지난 2월 말 새단장 공사에 들어간 칠곡 신나무골 성지 개발 계획 조감도. 1901년 소실됐던 대구본당의 한옥성당을 재현하고, 사제관을 복원할 예정이다. 신나무골 성지 제공

새로 복원될 신나무골 성당 동측 입면도(정면). (주)서홍기술건축사사무소 제공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