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아니오'에서 '예'

노중호 신부(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
입력일 2018-03-06 수정일 2018-03-06 발행일 2018-03-11 제 308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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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라고 하면 일단 세상살이가 편합니다. 마리아도 율법에 따라 간음죄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돌 맞아 죽을 위험도 없으니 ‘아니오’했으면 속 편했을 것입니다. 요셉도 원래 의롭게 살았고 마리아의 배신은 아팠지만, ‘아니오’ 하고 파혼했으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니오’라고만 했다면 정말 아찔합니다. 우리 구원의 역사가 막히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셔야 할 길과 모든 문이 닫혔을까 봐 숨부터 막혀 옵니다. 교회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을 것이고, 신앙생활의 모범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라고 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 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가장 큰 모범이고 신앙생활의 척도입니다.

얼었던 땅이 녹고, 죽은 줄로만 여겼던 모든 생명이 다시 움트는 이때입니다. 새싹으로 파릇파릇, 꽃으로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펼치는 시작의 시기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봉사해 주십시오’ 말씀드리는 시기입니다.

그러면 고민할 시간도 없이 일단 ‘안 된다’는 응답 먼저 하십니다. 바빠서 못하시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 나중에 하신다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서부본당 관할구역의 반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재건축으로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사하는 신자분들도 많아서 사람도,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비도 새고 전기도 나가고 환경도 열악해 ‘아니오’라고 하는 모든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예’를 묵묵히 실천하시는 신자분들 덕분에 살아갑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한결같이 하느님을 만나러 미사에 오십니다.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십니다. 저는 살아있는 성모님과 요셉성인을 만납니다. 혹자는 아이들이 적고 교회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 따지지 않고 그냥 매주 토요일 행복하게 미사하고 모여서 간식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 자리에서 ‘예’라고 대답하면 ‘아니오’가 ‘예’로 변해갑니다. 그것을 믿는 이들이 신앙인입니다.

사순 시기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예수님의 수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말합니다.

“너 혼자 이 길을 못 간다.”

고통의 길, 죽음의 길 혼자서 절대 못 가기 때문에 포기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정확히 맞았습니다. ‘아니오’라고 하는 세상에서 혼자서 못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성령의 힘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기도로 십자가의 길을 완수하십니다.

불순종이라는 미명아래 더러운 영은 세상을 흔들고 흩어버려 하느님께 멀어지게 합니다. 이럴수록 더 필요한 것은 항구히 순명으로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어른들이 더 많아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처럼 ‘예’하시며 지금 이 자리에서 천국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중호 신부(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