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25) 잃어버린 지갑, 뜨거운 형제애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8-03-06 수정일 2018-03-07 발행일 2018-03-11 제 308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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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주 추운 날, 지방에 갔다가 밤 9시경 서울역에 도착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역 근처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수도원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로 이동하다 다시 환승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한 정거장을 지나 또 한 정거장을 지날 즈음, 함께 사는 수도원 형제 3명이 버스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버스 안에서 눈이 마주친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이 추운 날, 어디를 갔다 오나 봐!”

“오늘 위원회 회의가 있었고, 회의 마치고 위원들 모두 저녁을 먹고 가는 길이예요.”

“저녁식사가 늦었구나.”

“아뇨, 좀 일찍 끝났는데 ○○○ 형제가 오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다시 지갑 찾으러 나온 거예요.” “지갑 찾으러 세 명이 함께 나온 거야? 이 추위에 의리 있네. 그래, 지갑은 찾았어?”

“예, 다행히 찾았어요. 우리 세 사람이 저녁식사 장소로 와서 수도원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걸으며 길바닥을 훑었더니, 아까 거기 길바닥에 그대로 있는 지갑이 있었어요. 추워서 사람들이 길바닥에 뭐가 떨어졌는지도 모르나 봐요. 그리고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거예요.”

형제들의 잃어버린 지갑을 찾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성경에서 잃었던 양이나 은전을 찾은 사람이 주변의 친구를 불러 잔치를 벌였다는데, 지갑을 찾았으니 잔치해야 하는 거 아니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지갑을 잃었다 찾은 형제도 환히 웃으며 답했습니다.

“저도 좋아요, 제가 삼선교에 가서 통닭에 맥주 살게요. 가실래요?”

우리는 그날, 내 옆에 형제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고 버스를 타고 삼선교로 갔습니다. 시간이 늦어, 우리는 후다닥 통닭과 생맥주를 시켰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우리 모두 한 테이블에 꼭 붙어 앉아 통닭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데 평소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통닭 한 마리를 더 시켰고 맥주도 더 마시면서 추운 겨울,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살면서 형제들이 실수한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 당시 상황을 재연하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개하는데,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날,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네 남자는 통닭집에서 가장 시끄럽게 떠든 진상(?) 손님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추워 통닭집에 손님이 많지 않아 그것이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닭의 뼈까지도 다 먹었을 정도로 깨끗이 먹고 맥주잔도 바닥을 비운 후 그곳을 나오려는데, 나는 잃어버린 지갑의 주인공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는 잃어버린 지갑 속에 얼마가 들어 있었어? 이렇게 잔치를 해도 괜찮아?”

그 형제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지갑 속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뿔싸! 현금 1만3000원에 교통카드 한 장. 그래서 나는 그 형제의 얼굴을 보며 물었습니다.

“계산은 할 수 있어?”

그 형제는 순수한 얼굴 표정에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형제가 말했습니다.

“강 신부님, 오늘 이 사건을 ‘잃어버린 지갑, 뜨거운 형제애’라고 가톨릭신문에 실으면 되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원고의 소재를 드렸고. 그 원고료로 이렇게 미리 잔치를 했고.”

좀 전에 눈물 날 정도로 형제애를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가진 터라,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계산을 했습니다. 잃어버린 지갑을 다시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뜨거운 형제애를 느끼게 해 준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잔치 비용을 계산한 나는 그 후로 지금까지 교통비를 절감할 겸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