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질문 /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8-03-06 수정일 2018-03-06 발행일 2018-03-11 제 308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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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르르 쾅쾅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 천둥소리라고 치기엔 너무 크고 요란한 소리가 간격을 두고 반복됐다. 자다 깨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무의식중에 든 생각이 혹시 미사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잖아도 작년 한반도 전쟁설이 흉흉할 때 전쟁이 나면 서울 내 미군부대가 있는 용산이 첫 목표가 될 거라는 소문이 돌자, 아이 학교의 한 선생님께서 핵폭발에 대비하는 방법과 대피경로까지 알려주었다고 한다. 창문을 빼꼼히 열어봤다. 밤하늘이 저리 빨간 것은 처음 본다. 심장이 심하게 쿵쾅쿵쾅 뛰었다.

올림픽도 잘 진행되는 중에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정신을 차리며 라디오를 켜고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저 심한 천둥번개였나 보다. 전쟁을 겪은 적은 없지만, 비슷한 소리나 외부 인자에 의해 작동되는, 유전적으로 뇌리에 잠재된 전쟁 위험에 대한 공포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님 옆에 놓인 초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했다. 심장박동이 제대로 돌아오기까지 정말 한참이 걸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내려와 있는 상황에 공격할 턱도 없고, 그리고 평상시라도 이 좁은 땅에 선제공격을 한다면 양측 모두 공멸에 이르리란 건 뻔한 사실이다. 힘이 약해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군의 사격연습장으로 쓰였던 이 지역은 해방 직후 현재의 용산 미군기지로 바뀌었다. 곧 이전을 한다지만, 그 땅이 또다시 힘의 원리로 일반시민이 아닌 다른 어떤 세력의 영역이 될까 봐 짐짓 두려워진다.

작은 나라라는, 약하다는 이유로 지배를 받고 타당한 의문조차 제시할 수 없었던 나라임을 떠올리니 다시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질문할 수 없는가.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이 안전을 이유로 약소국, 소위 비핵국가들의 핵 보유를 금지하면서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천명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핵무기 감축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이는 자신들은 그동안 술을 많이 마셔서 적응이 돼 있으니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도 되지만, 너희는 위험하니 술을 마시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모순된 논리와 똑같다. 게다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면 그 운전대를 우리가 강압적으로 빼앗을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협박이고 횡포다. 전 세계인이 이미 공동 운명체로 움직이는 이 시점에, 국제적인 연대체가 올바른 질문을 하고 정당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비겁한 모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작년에 이미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결의안을 유엔총회에 전달했고 “핵무기 금지를 위한 법적 형태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핵무기가 사라질 수 있도록 협상해야 한다”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확실히 표명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처럼 법을 만들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삶에 명철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스스로 올바른 길을 걸으려는 의지와 실천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