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24) ‘수사님 이름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2-26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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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부탁한 기차표 예매
승무원에게 표 보여주려는데
이름 잘못 입력해 확인 안돼 

내가 좀 편하자고 했던 부탁
부끄러운 모습 반성하게 돼

지방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내려가는 차편만 마련돼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표를 따로 예매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 수도회의 한 착한 후배 신부님의 업무 중에는 공무로 출장 가는 형제들의 교통편을 마련해 주는 것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차표 예매를 위한 도움을 받으러 후배 신부님이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후배 신부님은 무척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간절하고 애절한 표정으로 후배 신부님에게 사정 이야기를 한 후 예매를 부탁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인터넷으로 차표 한 장을 예매해 주었습니다. 내 좌석 정보는 [서울 행 2시 기차 좌석 번호 ‘13호차 6C’] 였습니다. 그 다음 후배 신부님은 내 핸드폰에 ‘코레일 톡’을 깔더니, 내 기차표 정보가 핸드폰에 담겨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서울행 2시 기차] 좌석 번호는 ‘13호차 6C’를 종이에 메모해 놓았습니다.

지방에서 회의는 잘 끝내고 시간 맞춰 역으로 가서 [서울행 2시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은 한산했고, 메모해 놓은 내 자리는 복도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됐고, 바로 앞자리 즉 ‘7D’석에는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우와, 기차 안에서도 충전이 되네!’라고 생각하며 태연하게 그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충전 시켰고, 그 동안 인터넷 검색을 하며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무원이 지나 가다가 나를 발견하자 ‘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핸드폰 충전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며, 좌석 주인이 오면 내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승무원은 ‘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 화면에서 ‘코레일 톡’을 찾아 ‘마이 페이지’로 들어간 후 ‘미등록고객’에서 ‘이름·전화번호·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확인을 눌렀습니다. 마음속으로 ‘짜자잔’ 하며 당당히 내 표를 여성 승무원에게 보여주려는데, 화면에는 ‘고객을 확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몇 번을 해도 똑같은 메시지가 뜨자 당황한 나는 급히 후배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후배 신부님도 고객 센터에 알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와 승무원! 서로 마주하는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요. 후배 신부님에게 곧 전화가 왔습니다.

“수사님, 죄송해요. 글쎄 제가 수사님 이름을 잘못 입력해서 승차권을 예매했네요.”

나는 승무원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그럴 수 있지. 내 이름을 뭐라고 입력했어?”

“그게 … 저 … 강 … 석 … ‘짐’이라고.”

후배 신부님의 당황한 목소리를 전화로도 역력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강석짐’으로 듣는 순간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우리 신부님에게 ‘짐’이었구나. 평소 내가 얼마나 ‘짐’이었으면….”

“아녜요, 그런 거 아녜요.”

전화를 끊은 다음, 코레일 톡 화면에 ‘강석짐’으로 이름을 기입한 후 확인을 눌렀더니 내 기차표 정보가 나타났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쉰 후, 기다리던 승무원에게 핸드폰 화면에 뜬 기차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승무원도 웃으며 충전이 되면 제 자리에 돌아가기를 권유하면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살다보면 내가 좀 편해 보자고 바쁜 형제를 붙잡고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 착한 형제들은 간절한 부탁에 거절도 못하고…. 그러나 조금만 부지런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상대에게 억지로 부탁하는 것,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닌 듯 반성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