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제주 4·3, 신앙인이 성찰해야 할 역사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2-26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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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사회적 모순과 불의에 대한 시민 저항, 그리고 정권의 무차별 탄압으로 인한 학살. 올해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의 짙은 그림자다. 1948~1954년 당시 전체 제주도민 10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임에도 오랫동안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지워야 할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가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와 함께 2월 22일 마련한 학술 심포지엄은 제주 4·3을 신앙인의 눈으로 성찰하고 민족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제주 4·3을 기억하고 내면적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주 4·3 당시 도민들은 인간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홀연히 나섰다. 그들의 희생과 피는 70년이라는 시간과 제주라는 공간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들이 지켜내려고 했던 자유와 평등, 그것은 곧 복음적 가치이며 오늘날 신앙인이 삶 속에서 함께 안고 걸어 나가야 할 교회 역사이기도 하다.

심포지엄에서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강조한 대로 성서를 관통하는 고난의 역사는 ‘인간 안에 하느님 존엄과 위엄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제주 4·3 또한 그러했다. 자신을 제물로 바친 수많은 희생자들의 순교 행렬, 그 연장선상에 있는 제주 4·3은 단순한 책임 규명만으로는 끝맺음할 수 없는 역사다.

1980년대 후반 진상 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2000년대에 이르러 정부 차원 조사와 보상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이데올로기 대립과 갈등이라는 근원적 상처조차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용서와 관용’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주 4·3이 지닌 복음적 가치를 되새김하고 그리스도인 삶 속에 승화시키는 작업이 더욱 절실하다. 제주 4·3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당신들은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