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라오스 찾은 서울 ‘하늘 빛 사랑’ 청년해외봉사단

라오스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8-02-20 수정일 2018-02-21 발행일 2018-02-25 제 308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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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운동장에 그네와 시소가 뚝딱뚝딱! 아이들 웃음소리 까르르~
낯설어하던 아이들 활짝 웃으며 달려와 “감사합니다, 컵짜이”
한달간 모여 세부 프로그램 기획, 학교 외벽 페인트칠, 시설 보수 등 구슬땀 흘리며 희망과 사랑 선물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라는 성구를 슬로건으로 모인 26명의 청년들이 먼 거리를 뛰어넘어 낯선 땅 ‘라오스’에 도착했다. 라오스의 정식 명칭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DR,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으로 전체 인구는 703만7500여 명(2017년말 기준)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약 1%만이 가톨릭 신자인 땅, 라오스는 한국에 비하면 척박한 환경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곳이다.

서울대교구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이사장 구중서, 원장 겸 지도 김민수 신부) 산하 제7기 ‘하늘 빛 사랑’ 청년해외봉사단(단장 문태일, 이하 청년봉사단)이 1월 30일~2월 8일 라오스를 찾았다. 특히 올해 서울 청담동본당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청년봉사단은 팍팍한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낯선 나라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짧은 여정을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늘 빛 사랑’ 청년해외봉사단 단원들이 라오스 나번 국립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운동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싸바이디, 라오스

라오스에 도착해 봉사할 라오스 비엔티안 도의 폰홍 군 나번마을에 위치한 나번 국립초등학교에 도착하자, 줄지어 선 아이들이 청년들을 반겼다. 두 손을 모으고 ‘싸바이디’라고 인사했다. ‘싸바이디’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라오어.

하나같이 해맑은 얼굴의 아이들이 먼저 청년들에게 인사했다. 키도 제각각, 생김새도 제각각인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꽃목걸이를 든 채로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얼굴과 말소리에 어색해하면서도 목걸이를 건네는 얼굴에는 설렘이 스치는 듯했다.

봉사에 참여한 김정하(율리아·24·서울 청담동본당)씨는 “아이들이 꽃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봉사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 쓰여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고 말했다.

나번 국립초등학교 통싸이 교장은 청년봉사단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먼 곳까지 찾아와준 여러분들에게 너무 고맙다. 이번 경험으로 한국과 라오스의 문화를 공유해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늘배움터 시설을 제작하고 간판을 달고, 난간과 화장실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봉사단.

■ 청년들의 주체적인 봉사활동

아이들과의 인사를 뒤로 하고 둘러본 나번 국립초등학교. 연평균 기온 섭씨 29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나번 국립초등학교는 한국에서 봐오던 초등학교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약 170명의 학생들이 교육받는 학교에는 8명의 교사가 교정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주거지에서는 닭, 강아지, 소 등의 동물들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청년들을 반겼다.

쉬는 시간 잠시라도 쉴 만한 벤치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고, 낡은 책걸상을 비롯해 칠한 지 오래 돼 빛이 바랜 건물 외벽, 텅 비어 있는 운동장에는 그 흔한 미끄럼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력공급이 어려워 아이들은 어두운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건물 저편에 위치한 화장실은 칠이 거의 벗겨져 얼핏 보면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청년봉사단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앞서 현장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누구할 것 없이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청년들은 라오스로 출발하기 한 달 전부터 현지에 알맞은 봉사를 하기 위해 준비해왔다. 각기 다른 모습과 생활환경 안에서 모인 이들은 전공도, 관심분야도 달랐다. 봉사단에 함께한 청년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팀을 꾸렸다.

디자인팀, 운동회팀, 후원팀, 제작팀, 교육팀 등 총 5개 팀으로 구성된 청년봉사단은 라오스로 출국하기 전 여러 차례 만나 자발적으로 봉사 개요를 짜고 세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디자인팀은 포스터, 현수막, 단체 티, 조끼, 로고 등을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고 제작했으며 벽화 작업과 페인트칠 등을 맡았다. 운동회팀은 아이들에게 활동적인 놀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했으며, 제작팀은 전체적인 학교 보수 및 벤치, 정자 등을 제작했다. 후원팀, 교육팀 역시 현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물품 등을 전달하고자 세심하게 계획을 짰다.

제작팀을 맡은 오현진(필립보·24)씨는 “해외봉사를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낯선 것도 많았는데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도 할 수 있고 필요한 곳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라오스에 뿌려진 나눔의 씨앗

현지 답사를 끝낸 청년들은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아이들이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건물 외벽 페인트칠 작업을 시작했다. 빛이 바래고 여기저기 까져있던 건물은 청년들의 손길이 닿을수록 깔끔한 외관으로 거듭났다. 아이들도 청년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홍나영(아기예수의 데레사·23)씨는 “페인트칠이나 집수리 봉사 같은 것을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톱을 처음 잡아본 이들도 청년봉사단 김군선 사무국장의 설명 아래 직접 나무를 자르고 나사를 박아 벤치와 정자, 난간 등을 차례로 완성해나갔다. 처음 해보는 낯선 일임에도 지혜를 모아 직접 설계하며 학교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고됨보다는 보람과 행복이 느껴졌다. 아이들도 점차 모습을 바꿔가는 학교에 신기해하면서 청년들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작업 과정을 지켜봤다.

라오스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푸른하늘배움터’의 설립자 김봉민(65)씨도 청년봉사단과 함께 했다. 그는 현지에서 약 20년 동안 아이들의 교육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또 이번 청년봉사단이 라오스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물꼬역할을 한 그의 아들 김대성씨도 교육 사업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

김봉민씨는 “봉사라는 것이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가 서로 유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들 곁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교감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봉사와 나눔이 쌓여갈수록 학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알록달록한 싱그러운 색감이 학교를 채웠으며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쉴 수 있는 벤치, 놀이터, 정자 등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하늘배움터’라는 간판이 한글로 쓰인 정자는 교실 밖 밝고 시원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청년들이 흘린 구슬땀 만큼, 넓은 모래벌판만 있던 나번 국립초등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들로 풍성해졌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앞다투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들. 청년들이 진심을 다해 나누는 사랑과 봉사를 통해 라오스에는 ‘나눔의 씨앗’이 자연스럽게 심어졌다.

■ 진심과 사랑으로 소통

“컵짜이!”

봉사활동의 결실이 하나둘 더해갈수록 ‘감사합니다’라는 뜻을 가진 ‘컵짜이’라는 라오스 말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어는 봉사활동에 나선 청년들의 입에서 더 많이 나왔다. 라오스 현지 아이들이 손수 꺾어다 준 꽃송이들과 작은 선물들 때문이다.

청년들이 처음 방문을 했을 때만 해도 어색해하며 주변을 맴돌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며 호감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꽃송이를 내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져온 선물들로 청년들은 봉사를 하다 말고 감동 겨운 웃음을 띠기도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 얼굴을 보다 보니 아이들과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높아졌다. 청년들이 봉사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이 찾아와 자리를 메우고, 쉬는 시간이면 라오어를 배우며 서로 소통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도 낯설어하던 아이들은 금세 활기를 띤 목소리로 청년들의 이름을 물었다. 청년들의 이름을 외운 아이들은 버스가 도착하는 이른 아침이면 버스 문 앞에 서서 아는 이름들을 외치기도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자라온 환경도 달랐지만 ‘진심’과 ‘사랑’으로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청년봉사단에서 총무를 맡은 고건(아론·31)씨는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먼저 이름을 부르고 달려와 안긴다. 그럴 때 사랑이라는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번 국립초등학교 5학년인 남짜이타오양도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지금은 어렵지 않고 좋다”며 수줍게 웃었다. 또 “예전에는 나무 막대기로 놀았는데 봉사단 덕분에 놀이시설이 생겨서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덧붙였다.

■ 다채로운 문화 교류

청년들은 나번 국립초등학교의 시설 보수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교육팀에 소속된 청년들은 한글 교육을 비롯해 액체 괴물 만들기, 색칠 공부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특히 ‘한글’을 처음 접해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교육은 아이들은 물론, 현지 선생님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청년들은 한글 자모를 비롯해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을 교육했다.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이내 밝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교육팀 김유정(베르다·21)씨는 “한글을 가르쳐줌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접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도 폭넓은 세상과 언어가 존재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지 주민들도 청년봉사단이 떠나는 날 김민수 신부와 청년들, 서울 청담동본당 해외선교후원회를 위해 정성으로 준비한 공연과 여러 행사를 선보였다. 나번 국립초등학교 아이들은 그간 준비해온 라오스 전통춤을, 푸른하늘배움터 학생들은 춤과 더불어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라오스와 청년들의 만남은 단순한 봉사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현지 주민들은 나눔을 위해 찾아온 청년들에게 ‘나눔의 행복’을 선사했다.

라오스 나번 국립초등학교 아이들이 청년봉사단이 마련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나번 국립초등학교 화장실 수리 전 모습.

청년봉사단의 한글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

라오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