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25) 내가 서 있는 곳 / 박그림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02-20 수정일 2018-02-21 발행일 2018-02-25 제 308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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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바람 부는 산에 들면 목덜미를 파고드는 찬바람에 온몸은 오그라들고 마음까지 춥다. 눈 쌓인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몸은 차츰 더워지고 겨울 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짙푸른 하늘에 무늬를 새기며 뒤엉킨 듯 조화로운 빈 나뭇가지들, 속속들이 드러난 산줄기는 가슴을 설렘으로 가득 채운다.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서 바라보는 산은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산에 들면 종교를 떠나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절대자의 권능에 고개 숙이게 되고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뭇 생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 안에 가득 찬 탐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 묻게 된다. 산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우리들이 이런 아름다움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조상들의 삶 속에 깃들어 있었던 산을 외경심으로 바라보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지혜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설악산의 정점 대청봉,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올랐고 이 자리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지는 아스라한 풍경과 꿈틀거리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커다란 감동에 빠졌다. 한겨울 체감온도가 최저 섭씨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설악산 대청봉에는 요즈음도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올라와 여러 가지 ‘바람’들을 겨울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 자리에 주말마다 올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라고 쓰인 둥근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면서 정상비 앞에서 ‘인증샷’ 찍기에 바쁜 등산객들을 바라본다.

산에 오른다는 것, 정상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정상에 선 사람들에게 주어진 그 시간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산에 들어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서 생명의 소리와 움직임 하나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내게 다가서는 아름다움 속으로 들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갖추고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야 함을 삶으로 드러낼 때 자연과 우리는 하나가 되리라. 자연조차 돈벌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돈에 매몰된 세상에서 우리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그나마의 자연이 남아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상처투성이인 대청봉의 상처와 아픔이 사라지고 이 다음 내가 서있었던 곳에서 아이들도 감동에 빠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되돌려줄 자연유산을 가로챈 부끄러운 조상으로 기억되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야 되리라 다짐한다. 한겨울의 짧은 햇볕이 스산한 바람에 흩어지고 엷은 햇살 속에 산줄기들이 그리는 수묵화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오직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설 자리이며 그들에게 베풀어지는 자연의 경이로움은 오직 그분, 절대자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