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 화해 일치]가족 II /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8-02-20 수정일 2018-02-20 발행일 2018-02-25 제 308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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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탈북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피정에 다녀왔다. 피정은 여러 번 참여해 봤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것은 처음이었고 더구나 북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한 경험은 특별했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은 약간의 사투리가 섞여 있긴 했지만 밝은 재잘거림은 남쪽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과도한 학업과 인터넷 세상에 덜 찌든 투명함이 돋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보통 자기 나이보다 낮은 학년으로 학업을 시작해 적응기간을 거쳐야 하거나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학업과 진학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 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가족 중 누군가와 함께 오거나 이후에 온 가족을 만난 친구들도 있지만, 아직도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중에 유독 자주 울컥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한 친구는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가 자신을 미리 남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북에 홀로 남은 엄마를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라는 단어는 이미 엄마가 된 나에게도 여전히 가장 아련하고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정겨운 품이다.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 약이나 백 마디의 위로보다도 이마를 짚어주는 엄마의 따스한 손과, 가슴과 가슴을 맞댄 포옹이 가장 큰 치유가 된다. 그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이번 평창올림픽을 통해 시작한 민족의 교류를 한반도 평화를 향한 마중물로 삼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뜨겁다. 한반도 평화 정착 여부가 세계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인지한 전 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이 속속 이 땅에 모여 평화를 향한 대책을 논의하고 결의를 다지며 자신의 염원을 전달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지구촌 가족, 그리고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아이들을 같은 시점에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금 나를 들여다보게 됐다. 평화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분단의 역사와 역설 안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 일한다는 거대한 목표를 품고 여러 현장과 단체와 관련해 일을 하지만, 정작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평화를 향한 정치적 담론과 대화가 삶 속에서의 절실함에 다가가는 실천이 되기를 바란다. 이 땅에 온 아이들이 주님의 현존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가족의 품 안에서 축복과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만나는 순간마다 그들에게 진정한 가족이 돼줄 수 있는 마음을 온전히 낼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순간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만들어가는 평화의 한 가족이 되기를 기도한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