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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열린 교회, 공동체가 대안이다’ 3. 열린 교회 공동체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8-02-06 수정일 2018-02-06 발행일 2018-02-11 제 3082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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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 좋은 공동체 위해… 마을로 들어간 성당들
 의정부교구 전곡본당, 협동조합 만들어 지역 경제활성화 기여
‘핵폐기장 반대’ 전주교구 등용본당은 에너지 자립 마을 실현
“지역에 열린 교회, 울타리밖 사람들과도 함께 하는 모습을”

교회는 공동체다. 하느님은 인류를 공동체적으로 구원하길 원하신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형제적 사랑으로 일치돼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래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이며 그 모범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그 원형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과연 스스로 공동체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가? 나아가 세상을 공동체적 친교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하는가? 세상에 열린, 복음적인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는 색다른 맛집이 있다. 지난해 8월 개업한 ‘참게여울주가’. 참게여울막걸리, 참게여울이화주 등 주류와 도토리묵, 달팽이무침 등 맛깔진 안주를 파는 술집이지만,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간이다.

‘참게여울주가’는 로컬푸드로 지역 경제와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추구하는 주류 협동조합이다. 이 협동조합은 연천군 농민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농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먹거리 문화를 발전시키며 다양한 공동체 문화를 일구고자 노력한다.

그 중심에는 의정부교구 전곡본당(주임 김규봉 신부)이 자리한다. 전곡본당은 2016년 봄부터 총 14차례의 협동조합 강좌를 열었다. 신자들뿐 아니라 관심 있는 지역 주민들이 대거 참석했다. 2015년부터 연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전통주를 빚는 교육을 받고 있던 주민들은 2017년 4월 주류협동조합 ‘참게여울주가’를 설립하고, 접근이 편한 전곡시장 뒤편에 술을 빚고 함께 모이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어 참게여울주가 문화공간 개업식도 마련했다.

전곡본당이 협동조합을 시도한 사례는 ‘참게여울주가’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2016년 10월 첫 번째 협동조합 ‘우리랑’을 선보였다. 노인 대상 요양 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구심점이었다. 성당 지하에는 지역사회에 열린 청소년 전용 도서관 ‘참게 도서관’도 갖췄다. 덕분에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육아와 청소년 교육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졌다.

■ 에너지 자립 마을

성당이 마을 안으로 들어간 또 하나의 사례로 전라북도 부안 등용마을을 꼽을 수 있다. 2003년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통해 부안 주민들은 생태와 환경,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됐다.

반대 운동이 일단락된 뒤 에너지 자립 마을의 꿈이 펼쳐졌다. 2005년 전주교구 부안성당, 등용성당 교육관, 등용마을, 원불교 부안교당에 시민햇빛발전소를 설립했다.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등용마을은 60여 명 주민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주민 80%가 신자들이다. 등용마을을 중심으로 에너지 자립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재생가능 에너지 생산을 위한 햇빛발전소와 지열 냉난방 시스템, 태양열 온수기 등을 설치했고, 주민 교육을 이어갔다. 2015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고 총 사용 에너지 50% 이상을 태양광, 풍력 등으로 대체하는 마을 에너지의 전환을 목표로 했다.

시민단체 ‘부안시민발전소’가 에너지 자립 마을 만들기를 이끌었다. 부안시민발전소는 2005년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에너지 자급 문제를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사단법인 생명평화마중물, 그리고 등용본당이 든든한 뒷받침을 했다.

에너지 자립 마을이 실현된 지금, 마을 주민들은 등용본당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꿈꾼다. 에너지 자립 마을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살기 좋은 마을,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온전히 보전되고 형제애를 나누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공동체적인 협동이 해법

전곡본당의 협동조합 실험이나 등용마을 에너지 자립 마을은 공통적으로 공동체적인 협동을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의 해법으로 삼았다. 본당은 고립된 폐쇄적 집단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열린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마을 속으로 들어간 성당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가톨릭농민회, 도시빈민공동체 등 대안 공동체 운동의 주목할 만한 사례들이 있다. 한국교회가 현재 미래사목의 대안으로서 26년째 추진하고 있는 소공동체 역시 ‘대안 공동체 운동’의 하나로 도입했다. 소공동체는 “공의회 정신을 구현하고 복음화 사명을 촉진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로서 여러 지역 교회에 다양한 형태로 확산”됐다.(가톨릭신문 2007년 4월 15일자,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기사 중) 경동현(안드레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은 소공동체를 “교회의 중산층화와 대형화된 제도 교회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교회 차원의 대안 공동체 운동으로 평가했다.

소공동체의 성과에 대해서는 현재 상반된 평가들이 공존한다. 교회 내 친교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국교회의 소공동체가 출범 당시부터 ‘교회 밖’을 고려하거나 포함하지 않았으며 이는 “세상 속의 교회로 나아가고자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거스른다”는 지적도 있다.

■ 초대교회 공동체 이상

소공동체를 포함, 교회 내 대안 공동체 운동은 초대교회 공동체를 그 이상으로 한다. 초대교회는 신앙을 바탕으로 공동생활과 공동소유의 특징을 보였다. 형제적 사랑과 나눔, 돌봄과 배려가 공동체 생활의 바탕을 이뤘다. 소공동체는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초대교회 공동체의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삶을 오늘날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석훈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는 “소비지향적이고 개체화된 현대인들에게 초대교회 공동체의 형식적인 면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다만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동현 연구실장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돌봄은 초대교회의 가장 강력한 특징 중 하나”라며 “이를 현대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영성을 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앙과 삶이 통합돼 교회의 모습을 형성했던 한국교회 공소 공동체의 영성이 오늘날 소공동체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허 신부는 교회가 늘 ‘공동체적 구원’을 선포해왔음을 상기시키며 되묻는다.

“교회 안에는 갈라진 사회를 이어 깁는 공동체적 노력이 경주되고 있습니까?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마주서 이웃이 되어주고,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담소하고 차를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공동체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본당 신자들은 얼마나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대안 공동체 운동의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 지역자치단체들의 일종의 트렌드가 된 ‘마을만들기’ 역시 제한적이고 세속적이나마 공동체성을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의 대안 공동체 운동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교회 전체가 소공동체 사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안 공동체의 모색이 일부 사람들의 특별한 운동으로 그친다면 그 의미는 줄어든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 전체가 추진하고 있는 소공동체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크다. 우선은 교회의 근간인 본당 공동체가 복음적인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역 주민과 사회에 활짝 열려 교회 울타리 밖의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연대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경 실장은 “소공동체가 사회와 의사소통하며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으려면 교회 안에 머물거나, 내부 활동에만 집중해온 사목 관행과 교회상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