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미리내성지(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2-06 수정일 2018-02-06 발행일 2018-02-11 제 308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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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사목하고 묻힌 곳…
순교 신심 전하는 터전으로 가꿔

미리내성지 경당.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

외길 경사로를 굽이굽이 따라 올라가니 어느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신앙선조들을 박해자들의 눈에서 숨겨준 고마운 산들이다. 미리내성지. 박해시기 신앙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자 성 김대건 신부가 사목하고 또 묻힌 자리다. 교구가 교구민들에게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전한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 수선(首先, 최초의) 탁덕(鐸德, 사제) 치명 복자 안드레아 김 신부님의 거룩한 유해가 묻혔던 유서깊은 본당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고, 크고, 오래고, 새롭고 또는 치명자들의 발자취로 다져진 이 본당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정신이 철저한 신자들로 가득하게 된다면 우리 교구는 그리스도의 튼튼한 모퉁잇돌 위에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1963년 12월 21일에 초대 교구장으로 착좌한 윤공희 주교는 ‘교구 설정에 즈음하여’라는 교구장 사목지침을 통해 교구가 치명자, 즉 순교자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그 의지가 처음으로 실현된 곳이 바로 이곳 미리내 성지다.

윤 주교는 착좌식 사흘 후인 12월 24일 미리내를 찾아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와 낮미사를 주례했다. 윤 주교는 2011년 2월 13일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특집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듣는다’를 통해 “초창기 교회 ‘순교 선열들’의 얼이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교구라고 생각했다”면서 “특히 미리내성지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성지이거니와 교구민들의 순교신심을 고취시키기에도 충분한 성지였다”고 회고했다.

미리내성지 내 김대건 신부 묘지.

교구 설립 다음해인 1964년부터는 해마다 9월 순교복자성월, 즉 오늘날 순교자성월에 미리내성지에서 순교자현양대회를 열었다. 윤 주교는 1972년 복자성월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현양대회는 “하나의 성대한 기도요, 우리 믿음의 간곡한 호소이며 진리와 정의에 대한 공동의 현양이요 찬미”라고 강조하면서 “신자들은 열렬한 기도와 자기 생활의 철저한 개선으로 순교자들의 유덕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리내성지 순교자현양대회를 계기로 교구 순교자 현양운동은 빠르게 확산됐다. 김대건 신부와 관련된 장소나 본당에서도 현양이 활성화 됐고, 교구 내 본당뿐 아니라 공소 등에서도 ‘김대건 신부의 밤’ 등의 신심행사를 열었다.

미리내본당은 교구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1964년에는 신자 감소와 사제부족으로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교구가 김대건 신부의 순교신심을 교구의 유산으로 인식하면서 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순례지로 자리 잡게 됐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