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저도 숨 쉬고 있어요 / 노중호 신부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
입력일 2018-02-06 수정일 2018-02-07 발행일 2018-02-11 제 308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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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온 가족이 토마토 농사로 바쁘실 때 집에 먼저 가 있으라는 말씀을 듣고 밭에서부터 집까지 걸어가는 꼬마는 길에서 한참을 주저앉아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개미들이 줄지어 집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주고 한참이나 지나서 꼬마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결국 일을 다 끝내신 아버지께서 꼬마를 만나 품에 안고 갑니다. 그 꼬마가 어느덧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전 생애가 늘 생명을 살리시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2000여 년 동안 융통성도 없고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전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23만 명이 넘는 청원의 주제는 ‘낙태죄 폐지’였습니다. 내가, 내 딸이, 내 가족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생을 망치고, 임신은 모든 삶의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합니다.(제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들) 그렇기 때문에 낙태를 합법적으로 하게 해 달라는 청원이었습니다.

23만 명. 이 숫자로 다 설명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모습과 흐름의 단면을 나타내주고 있어서 가슴이 매우 아프고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유다의 구차한 변명과 발뺌이 아니더라도, 고해성사와 미사성제를 통해 낙태, 그 숨을 끊어버리는 고통과 슬픔을 알게 됐습니다.

‘낙태’라는 말은 태에서 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숨과 태아의 숨이 연결된 태를 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울 것 같아 끊어버렸는데, 더 좋은 길, 더 빠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태를 떨어지게 했는데, 영원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평생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품을 고대했던 태아를 차디찬 기계로 찢어 하느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숨을 끊어버리는 과오와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 나자렛 성가정을 기억하고 또 기억합니다. 우리 모두가 누구만의 탓을 돌릴 것이 아니라 요셉처럼 가장답게 큰 품으로 안아주십시오. ‘미혼모’라는 의미는 결국 요셉의 넓은 어깨, 진정한 아빠가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등으로 지면 짐이 되는데, 가슴으로 안으면 사랑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흐름이 중요합니다. 죽음의 분위기가 자꾸 조성된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의 자녀이고, 하느님의 한 가족이니 생명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님도 아빠 요셉과, 엄마 마리아의 품이 있으셨기에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태 안에 있는 예수님을 죽이지 마십시오.

제가 함께 살고 있는 서부본당 교우들에게 공지사항 시간에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에 함께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미사 마치고 한 분도 빠짐없이 서명하시는 모습에 감사와 감동이 가득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약한 개미의 길을 지켜 주었던 꼬마의 시간이 사랑 가득한 교우들 덕분에 되살아났습니다.

‘저도 숨 쉬고 있어요.’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를,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생명의 길을 우리는 가야 합니다. 하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우리가 숨을 끊어버려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생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 숨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