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21) 세상 안에서 걷는 순례길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1-30 수정일 2018-01-30 발행일 2018-02-04 제 308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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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까지 이어진 노래와 괴성
순례객은 잠 못들고 괴로워도
현지 사람들에겐 ‘위로의 시간’ 

베트남 라방의 성모님 발현지 근처, 우리가 묵은 숙소 주변은 한 마디로 시골이었고 가게나 식당은 띄엄띄엄 있을 뿐 근처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숙소 앞 식당에서 어느 일행이 노래방을 열었고 질러대는 괴성이 너무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후배 신부님이 그 식당을 찾아가 봤더니 20여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고,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구경만 하고 있었고. 결국 그 날 노래방은 밤 12시 정도가 되어 끝이 났습니다.

그 날, 시끄러워 잠을 못자는 동안 속이 너무 상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 순교지를 순례하는 동안 가졌던 침묵이 깨져 힘들었고 비오는 한밤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괴성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베트남 노래가 형편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습니다. 12시가 넘어 그래도 잠은 좀 잘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까스로 잠을 ‘쬐끔’ 잤습니다.

그 다음 날 일정으로 우린 새벽에 일어났고, 창밖을 보니 빗줄기는 더 굵어졌습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러 숙소에서 나왔고 숙소 앞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던 식당을 피해 굳이 비를 맞더라도 조금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식당이든 동네든 어젯 밤엔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만 입이 삐쭉 나온 듯….

노래방을 했던 식당 앞을 지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노래방 기계도 없었고 대형 스피커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로 어제의 일이 궁금한 사람은 나 혼자였습니다. 암튼 식당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시켜 아침으로 먹으면서 그 날 준비된 마무리 순례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TV를 켰습니다. 그러자 음악 방송 채널인 듯한데, 베트남 남자 가수 두 사람이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래 가사는 전혀 몰랐지만 들리는 음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제 힘들게 들어야만했던 괴성과는 전혀 다르게 차분한 베트남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순간 잔잔한 행복감마저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후배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원래 베트남 노래가 저렇게 좋았어?”

“예, 베트남 노래는 편안해요. 그리고 인기 좋은 노래는 정말 심금을 울리기도 해요.”

“아차, 어제 노래방 했던 집 식당에 보니 노래방 기계랑 스피커는 안 보이던데.”

“아마 어제 이 마을에서 어떤 목적으로 조촐한 잔치를 했고 그래서 분위기나 흥을 돋우려고 노래방 기계를 빌려왔나 봐요. 그래서 빌려온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이 한 곡이라도 더 부르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 싶어요.”

“정말?”

“그런 경우가 좀 있어요. 여기는 가난한 동네라 잔치가 있을 때면 여기 사람 특성상 가족 단위로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싶어 하죠. 그러나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저 노래방 기계라도 빌려서 마을 사람들과 다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거든요.”

후배 신부님의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어제의 일을 그렇게 말해주니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가난의 삶을 노래로 승화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절에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베트남 순례를 하면서 내가 순례를 하고 있기에 내가 만나는 세상도 내 마음처럼, 나를 위해서 순례의 마음을 갖고 고요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 나름대로 살아갈 방식이 있었고 나는 순례자로서 순례의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후배 신부님의 말을 듣고 보니 어젯밤 베트남 사람들의 노랫소리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