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스승이요 의사인 주님과 함께 복음의 씨를 / 김창선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8-01-30 수정일 2018-01-30 발행일 2018-02-04 제 3081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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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욥기 7,1-4.6-7   1코린 9,16-19.22-23   마르 1,29-39)
공동체 소외된 병자들 치유와 새 사명 받아
기도로 하느님과 친교 이루는 신앙 가꾸길

입춘을 맞는 연중 제5주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복음의 정신을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치유하시어 삶의 기쁨과 희망을 되찾아주십니다. 외딴곳에 가시어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고을을 찾아다니시며 하느님께서 부여받은 사명인 인류구원을 위해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독서를 통해 고통 속에 탄원하는 욥과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바오로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봅니다.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기도하시는 가운데 사목활동을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내 자신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우리 주변에 고통 속에 힘들게 살아가며 목말라 생수를 찾는 분들을 보면 ‘삶은 고해(苦海)다’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구약(욥기)에 의롭고 거룩한 인물로 등장하는 욥도 고통 속에 불면의 밤을 지새우다가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온종일 고달프게 일한 뒤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다”고 하면서 “자신의 목숨이 한낱 입김”임을 기억해 달라고 탄원합니다.(욥기 7,1 이하)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사명은 권리가 아니고 의무이기에 “삯을 받지 않는 것이 나의 삯이다”라고 역설적인 표현을 합니다. 자신은 자유인으로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려고 스스로 종이 되어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한다고 떳떳이 밝힙니다.(코린토 9,16 이하)

오늘 복음말씀(마르1,29-39)은 예수님의 하루 일과를 밝힙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갈릴래아에서 시작되었지요. 그 중심지는 예수님의 집이 있는 카파르나움(마르 2,1)입니다. 당시에는 다마스쿠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연안길목인 이곳에 로마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세관도 설치된 교통의 중심지였답니다. 어부였던 예수님의 첫 제자들과 세리였던 마태오를 불러들인 곳도 여기며, 시몬 장모의 치유를 포함해 많은 기적이 베풀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시며, 수많은 병자들을 현장에서 고쳐주시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공생활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르 2,17)고 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국민의사’로 일하십니다.

존 브릿지 작품 ‘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시는 예수’ .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이 기적사건에 호기심을 갖거나 의아해합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병자들이 각기 어떤 사정으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질병으로 오래 고통을 겪다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됩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그들은 고통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되찾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전문 의사는 백성들을 치료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의사가 치료에 실패하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지요.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루카 4,23) 예수님께서는 이런 위험도 감수하시며 그들을 손잡아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신 스승이요 ‘국민의사’이시기에 가시는 곳마다 많은 병자들이 몰려듭니다.

당시 유다사회에서 한 마을은 단일 씨족으로 이루어졌고, 가족은 형제들로 대가족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사위의 집에서 기거함은 그녀를 돌볼 가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벳사이다 출신의 어부였던 사위가 생계를 저버리고 예수님만 따라다니니 가정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테지요. 어쩌면 베드로의 장모는 화병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대신하여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주시니 열이 달아났습니다. 세균감염에 민감한 현대인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접촉을 하십니다. 지중해 문화에서는 마주한 사람들 간에 손을 자주 댄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잡으신 것은 치유의 힘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일어나자마자 봉사에 나섭니다. 이제 자기의 역할과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삶의 의미가 새로워졌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봉사로 되돌려드립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언행의 일치와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하십니다. 이처럼 공동체에서 소외되었던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새 사명을 받고 공동체로 돌아옵니다.

첫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십니다. 시몬과 그 일행들은 그분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외딴곳은 하느님을 만나는 광야입니다. 광야를 걷는 사람은 목이 마릅니다. 그들이 기도 중인 예수님을 찾는 모습이 어쩌면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찾는 목마른 우리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하루의 일과에서 하느님께 부여받은 복음 선포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도록 공생활 초기부터 제자들을 파견하셨고, 승천하시기 전에도 온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내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단샘을 발견했으니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은 늘 기도하시며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데서 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기에 모든 것은 기도로 시작되고, 기도와 일은 함께해야 합니다. 기도는 자신의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진실한 우정을 나누며, 침묵 속에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 그분의 뜻을 따르는 자기발견의 시간입니다. 새봄을 맞아 주님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선교의 도구가 되어야겠습니다.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