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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 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1-30 수정일 2018-01-30 발행일 2018-02-04 제 308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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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세 분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물론 첫 번째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신 육적(肉的)인 아버지입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버지는 다부진 몸매에 강단이 있었습니다. 쌀가마니를 보통 사람의 두 배는 짊어질 정도였으니까요. 다재다능하셔서 손수 집을 증축하는 것은 물론이고, 웬만한 농기구도 직접 제작해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는 세 가지 소중한 유산(?)을 물려주셨습니다. 바로 도박과 금연, 돈 관리입니다. 도박은 한 번 발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고,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며 철저하게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어. 돈을 빌려 쓰는 것도 습관이야. 번 만큼만 써야 한단다”라고 강조하면서 평생 채무 없이 살았습니다. 저도 그 훈육 덕분에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보통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 아버지는 영적인 아버지, 즉 대부(代父)입니다. 영적 아버지와는 신앙이 없었던 위관 시절 대대장과 참모로 만났습니다. 대대장으로 취임했을 때 훤칠한 키와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위압감을 느꼈습니다. 1년여를 함께 근무하며 외모와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소령으로 진급 후 대대를 떠났고, 6년 후 다시 한 부대에서 근무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때 세례를 받으며 대부를 청했습니다.

군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 대부분은 전역 후 대부, 대자 간에 교감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님은 전역 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안부를 묻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암투병 중인 아내의 간호를 도맡으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네”라면서 정성을 다합니다. 하느님을 굳게 믿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신실한 성가정의 모범을 배우게 됩니다.

세 번째 아버지는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불혹의 나이인 40이 돼서야 알게 됐습니다. 2000년 8월, 세례를 받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게 됐죠. 하느님은 무지의 어둠 속을 걸어가는 저에게 밝은 영광의 빛을 주셨고, 죄의 얼룩으로 누더기가 된 영혼을 성수로 깨끗이 닦아주셨습니다.

신앙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요, 분기점이 됐습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주셨습니다.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는 극도의 이기적인 삶에서 이웃사랑의 눈을 뜨게 하셨고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든든한 빽(?)이 되셨으며, 일상의 감사함을 자각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는 길을 알려주셨죠.

세 분의 아버지께서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육적·영적 아버지도 하느님께서 보내 주셨을 것입니다. 그분들을 통해 생명을 받고 성장했으며, 은총을 받았습니다. 파스칼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불혹이 돼서야 하느님 아버지를 알게 됐지만, 하늘나라로 떠나는 날까지 하느님을 섬기는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 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