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무지의 벽 / 손서정

손서정(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8-01-30 수정일 2018-01-30 발행일 2018-02-04 제 308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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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무지는 언제나 어려움을 낳는다.’ 이는 평화의 지휘자로 불리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한 말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다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역사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삶의 선택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기도 했던 그가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를 만나서 나눈 우정과 대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 출간되면서 세상은 평화를 향한 그의 활동들을 다시금 눈여겨 바라보며 재평가했다.

역사 속에서 적으로 태어났으나 삶에서 친구가 된 둘은 1999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분쟁지역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웨스트이스턴 디반(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갈등과 분쟁, 테러로 얼룩진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니며 문명과 민족 간의 화합을 연주한다. 2011년 8월 15일, 우리나라를 방문해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며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한 특별한 인연도 있다.

그가 다양한 출신 배경의 학생들을 오케스트라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우리가 타인에 대해 어쩌면 이다지도 무지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삶의 속도와 대중성에 묻혀서 진정한 나를 바라보지 못한 내가 감히 타인에 대해서 짐작을 하고 평가를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난해하고 복잡한 정치와 이념이 세워놓은 큰 벽 너머에 있는 북녘의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입과 상상을 통해 그들의 얼굴을 빨갱이 투성이로 색칠하기도 한다.

정치와 이념이 세워둔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근본적인 정치적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벽의 틈새를 발견하고 틈을 벌려 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비단 정치적 수단만이 아니다. 분단체제 하에 고정된 시각의 대치와 분열을 넘어선 틈새는 오히려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고 수용되는 창의적인 예술과 함께 환호할 수 있는 스포츠를 통해 열려진다. 그 틈새의 기회가 드디어 우리에게로 왔다. 평창올림픽이라는 스포츠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북한 선수단과 예술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서로 만나고 알아가고 있다.

물리적인 통행을 단절하는 분단의 벽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무지의 벽이다. 상대를 알지 못해 망상적인 두려움을 창조해 다시금 어려움에 처할 것인지, 나와 상대를 바로 알아가며 무지의 벽을 깨뜨리고 다 같이 화합해 감동의 합창을 부를 것인지는 나의 선택,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긴장과 반감 속에서 만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학생들이 추후에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탄생시킨 여정이 무지의 벽을 넘어서려는 우리에게도 함께하기를 소망하며 주님의 깊은 은총을 청한다.

손서정(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