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20) 세상 안에서 걷는 순례길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3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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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순교지 순례하며
성모 발현지에서 묵상
밤늦게 노랫소리 잠 못 이뤄

예전에 베트남 순교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훨씬 이전에 베트남 순교지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베트남이 현재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 하에 있기에 공식적인 순교지 방문은 어렵다는 말을 들어서 베트남 순교지 방문은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몇 해 전, 우리 수도회가 베트남 하노이에 진출했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신부님께 연락해 ‘순교자 영성을 살아가는 수도자로서 베트남 순교지를 방문해 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그 신부님도 흔쾌히 승낙을 했고, 서로의 일정을 조정해 베트남 순교지를 방문할 날짜를 잡았던 것입니다.

구체적인 일정과 준비 사항 등을 확인한 후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후 우리는 하루를 쉬고, 그다음 날부터 하노이 부근의 베트남 가톨릭의 박해와 순교자들의 삶을 공부한 후 순교지를 찾아 순례를 떠났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무척 힘든 여정이었지만, 베트남의 순교 역사와 순교지를 방문하면서 거기서 만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며 기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순교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려는 구도자들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베트남 중부 지방으로 가서 그 지역 순교지를 방문했습니다. 그 중에 라방 지역 성모님 발현지를 찾아갔습니다. 라방의 성모님은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베트남 신자들에게 발현한 성모님입니다. 발현하신 성모님은 신자들에게 용기와 큰 위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베트남 순교지를 방문하면서 느꼈던 묵상이 라방의 성모님 발현지에서 정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라방에 도착한 우리는 소박한 숙소에 짐을 풀고, 성모님 발현지에서 하염없이 기도했습니다.

오후 내내 기도한 후 숙소로 돌아와 수녀님들이 차려주신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또다시 성모님 발현지에 가서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차츰 먹구름이 들어차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비가 쏟아졌습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씻고 다음 날 순례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하려는데…. 일이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숙소 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쩌면 ‘노래’라기보다는 몇몇 사람들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베트남 시간으로 밤 9시, 한국 시간으로는 밤 11시! 그 날 힘든 순례를 해서 그런지 우리는 너무나 지쳐있는데….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행인 신부님 방으로 건너가 물었습니다.

“신부님,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요. 이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비 오는 날 밤에 이런 일이…”

“휴, 오늘 하루, 힘든 순례를 해서 그런지 피곤한데,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런데 누구 한 사람 말리는 이가 없네요.

“실은 좀 전에 나갔다 왔는데 우리 숙소 앞 식당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 역시 말리기는커녕 구경만 하고 있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묻기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끝나겠지 싶어 그냥 돌아왔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할건지….”

“지금은 흥에 겨워 노래하지만, 시간이 되면 끝나지 않겠어요?”

“그런데 베트남 노래, 참 듣기가 힘들기는 하네요.”

“아뇨, 베트남 노래가 좋은데….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베트남 말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고.”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