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저임금 논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4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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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아닌 상생으로 인간다운 삶 추구해야
종교·노동계 - “인간다운 생활 보장 취지 환영” ‘생활임금’으로는 여전히 부족
사용자·자영업자 - “인건비 증가로 고용 어려워” 실제 해고 사태 일어나기도
사용자와 노동자 이익 사이 대립구조로 인식해선 안 돼
임대료·가맹비·카드 수수료 등 경제구조 개선에서 해법 찾아야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입주민들이 최저임금 상승분만큼 자발적으로 관리비를 추가 납부해 경비원 전원의 고용을 유지했다.

2018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반기던 종교계와 노동계의 목소리가 오래 가지 못하고 고용 불안에 대한 우려로 바뀌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월 1일 제4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사회적 활동의 중요성에 상응하지 않는 임금을 받는 분야의 노동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정수용 신부) 역시 지난해 최저임금과 관련된 기사를 모은 자료집을 만들어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에 대한 교회 안팎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교회의 기대대로 고용노동부 소속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해 7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원회의를 열고 2018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7530원으로 결정했다. 시급 7530원은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유급주휴 수당을 포함하면 월급으로는 157만여 원이 된다. 최저임금이 오른 것은 바람직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액수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저임금은 2007년도에 12.3% 오른 뒤 한 자릿수 인상률에 그치다가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에 복귀한 것이어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최저임금 도입을 주장해 온 종교계와 노동계는 환영했다. 이와 반대로 사용자측과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인건비 증가로 이어져 고용을 유지하기 힘들어 질 것”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했다.

새해가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 94명이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월 31일부로 해고 통보를 받은 해당 아파트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의 해고안 결의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최근 법원에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해고 논란은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나타난 대규모 해고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지만 편의점이나 커피숍 아르바이트, 건물 청소원 등에게 가해지는 고용 불안 현상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과거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맡던 주문접수 업무를 주문 입력 기계로 대체해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낸 커피숍들이 점차 눈에 띈다. 건물주들이 청소원 수를 줄여 청소원 한 사람이 맡는 업무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와 달리 서울 천왕동과 울산 태화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경비원들의 최저임금 상승분만큼 자발적으로 관리비를 추가 납부해 경비원 전원의 고용을 유지했다. 상생의 정신을 보여준 모범 사례다.

사회적 약자로서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불합리한 경제구조를 먼저 고치면 해소할 수 있다는 교회의 시각과 달리 최저임금 문제를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대립구조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서울 노동사목위 박신안(베로니카) 사무국장은 “최저임금 문제를 사용자와 노동자의 대립 구조로 몰아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소규모 사업장의 높은 임대료, 프랜차이즈 가맹주들이 본사에 내는 부담스런 가맹비, 카드 수수료 같은 경제구조적 부분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면 최저임금 상승은 사용자에게 그리 큰 부담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가톨릭대학교 재학생 박지웅(대건 안드레아·24)씨는 “올해 최저임금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생활임금’으로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현행 최저임금도 노동자들이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관계기관의 관리감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순 기자>

◆ 최저임금제란

최저임금제란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해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제의 근거는 명확하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제32조 제1항 제2문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며 제34조와 제35조에 최저임금제 실시 근거를 두었지만 당시 우리 경제가 최저임금제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실제 운용하지는 않았다. 저임금의 제도적 해소와 근로자의 안정된 생활 보장이 불가피해지자 1986년 12월 31일 최저임금법을 제정·공포하고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해왔다.

최저임금법은 헌법의 위임에 따라 최저임금 결정과 시행의 구체적 과정을 관장한다. 최저임금법에 의해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이 최저임금위원회다. 위원회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위원,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각 9인으로 구성된다.

현재 최저임금은 지난해 8월 4일 발표된 ‘2018년 적용 최저임금 고시’에 따라 시간당 7530원이다. 이는 지난해 6470원에서 1060원이 오른 것으로 역대 최고 수준 인상액이다. 인상률은 16.4%로 1991년 18.8%, 2000년 9월∼2001년 8월 16.6%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정다빈 수습기자>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