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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라위 루스빌로 밴드 한국 무대 선 날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3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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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나라에서 엄마에게 배운 음악을

1월 16일 수원교구 분당성요한성당에서 김청자 교수와 함께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말라위 루스빌로 밴드. 분당성요한본당 제공

“치뭼웨(Chimwemwe)~ 치뭼웨~ 치뭼웨뭼웨~”

1월 16일 수원교구 분당성요한성당.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온 12명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치뭼웨(Chimwemwe)’. 말라위 말로 ‘기쁘다, 흥겹다’는 의미다. 전자기타와 전자베이스, 색소폰, 트롬본, 트럼펫, 드럼이 흥을 북돋운다. 아프리카의 음악을 표현하는 아프로팝(Afro-pop)에 한국 전통의 가락이 녹아들었다. 무대도 객석도 음악에 취해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인다. 바로 말라위 카롱가에서 온 루스빌로(Lusubilo) 밴드의 공연이다.

■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 창작도

“와! 정말 굉장해요!”

한국을 찾은 루스빌로 밴드의 첫 반응은 환호였다. 몸으로, 소리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것 외에는 뭐라 더 표현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1년 내내 따뜻한 아열대 기후인 말라위에는 4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는 있을지언정 ‘겨울’은 없다. 이들에게 추운 겨울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이지만 눈은 본적도 없거니와 상상도 안 되는 존재였다. 루스빌로 밴드는 1월 6~17일 이어진 방한 일정 중에 올림픽홍보관과 눈썰매 등 야외 겨울놀이 체험 시간도 가졌다. 특히 1월 12일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아트드림캠프 발표회와 16일 수원교구 분당성요한성당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창작곡 치뭼웨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치뭼웨는 아트드림캠프 프로그램의 하나로 지난해 11월 말라위를 찾아온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 만든 곡이다.

■ ‘엄마’의 나라

루스빌로 밴드에게 한국 방문은 단순히 겨울을 체험하는 것 이상의 기쁨이다.

한국이 바로 ‘엄마’의 나라기 때문이다.

“‘엄마(Mommy)’께 늘 감사합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음악으로 사랑하고, 기쁨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한국 방문은 제게 너무도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맡고 있는 마다 리조(28)씨의 말이다.

루스빌로 밴드가 부르는 ‘엄마’는 바로 김청자(아녜스·74) 교수다. 국경을 막론하고 ‘엄마’라는 말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지만, 모계 중심 사회인 말라위에서 부르는 ‘엄마’는 더 각별하다. 처음 김 교수가 말라위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은 김 교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단원들이 김 교수를 ‘엄마’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그 모습에 아이들은 스스로 ‘엄마’라는 호칭을 선택했다.

김 교수는 2010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같은 해 9월 말라위 북부의 작은 마을 카롱가에 ‘루스빌로 뮤직센터’를 설립했다. 메조소프라노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 명성을 떨치던 김 교수였지만, 모든 재산을 다 처분하고 말라위를 향했다. 하느님께 받은 축복을 나누며 여생을 살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이에 감명 받은 조병우(베네딕토) (주)유풍 회장을 비롯한 여러 후원자들도 센터와 기숙사 설립을 지원했다.

■ 희망의 루스빌로 뮤직센터

‘루스빌로’는 말라위 북부 툼부카(Tumbuka)족 말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 제대로 된 교육시설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말라위에 탄생한 루스빌로 뮤직센터는 그야말로 이들의 희망이 됐다.

센터가 설립된 지 8년. 이제 뮤직센터의 음악가들은 전문음악가로 세계 각지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밴드 설립 3년만에 말라위 전국대회 1위의 밴드로 우뚝 섰고,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성공적인 공연무대를 이어갔다. 2016년에는 독일 ‘안드로메다 메가 익스프레스 오케스트라’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뮤직센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들은 뮤직센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한국을 찾은 밴드 단원 12명 중 6명이 교사들이다. 모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20명의 학생들이 전문 음악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또 이중 3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국비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김 교수는 뮤직센터 설립 10주년이 되는 2020년에는 뮤직센터 운영을 현지인에게 넘겨줄 생각으로 뮤직센터가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뮤직센터 4학년이며 밴드 보컬을 맡고 있는 메기(21)씨는 “뮤직센터에서 음악을 만나면서 희망을 얻고 내가 선택되고 축복받은 사람임을 깨달았다”면서 “더 열심히 살아가면서 또 그런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루스빌로 밴드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음악센터를 시작으로 인근에 청소년센터 4곳을 추가로 더 설립했다. 초등학교 교실을 짓고, 장학생도 지원하고, 지역 내 우물도 17개나 팠다. 음악 교육에만 머물지 않고 마을이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김 교수의 뜻에 동참하는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의 공이 컸지만 밴드의 공연 수익금도 보탬이 되고 있다.

하지만 김 교수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교육이나 경제적 자립 같은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하느님이 전하는 축복의 통로일 뿐이에요.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죠. 그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말라위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힘닿는 데까지 하느님의 도움을, 위로를, 그 사랑을 전하는 작은 밀알 하나가 되고 싶어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