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가톨릭청소년문화원 (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3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30년간 교구청사였던 건물 지금은 청소년 위한 공간으로

가톨릭청소년문화원 입구.

수원 화서시장에서 주택가로 들어섰다. 가는 길목마다 교회 기관·단체가 눈에 들어온다.

환경단체인 마중물을 시작으로 수원 엠마우스, 민족화해센터, 수원대리구 화서동성당, 성바오로서원…. 이 정도면 이른바 ‘가톨릭타운’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톨릭청소년문화원(이하 문화원)이 있다. 왜 청소년 시설 인근에 교회 기관·단체가 이렇게나 많은 것일까. 바로 이 문화원이 30년간 교구 행정의 중심, 교구청이었기 때문이다.

교구 설립 당시 교구는 고등동성당에 임시로 교구청을 마련했다. 하지만 교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별도의 교구청사가 필요했다.

교구청 자리를 물색하던 교구는 1966년 5월 화서동 100번지에 1만 1068㎡의 대지를 매입했다. 이어 교황청 특별보조금과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의 지원금을 받아 연면적 1444㎡의 교구청을 완공, 1967년 10월 20일 교구청 축복식을 거행했다.

고등동 임시교구청은 주교를 포함해 단 3명이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사무업무를 관장하는 ‘상서국’이 모든 교구 행정업무를 도맡았다. 화서동에 교구청이 마련되면서부터는 교구청도 체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기 시작했다.

가톨릭청소년문화원 전경.

교구는 1967년부터 상서국의 업무를 세분화해 비서실, 관리실 등을 설치해나갔다. 1972년에는 조직 간에 상하관계를 정하고 각 기구마다 맡아야 할 행정 업무를 분명하게 규정했다. 교구는 사무국 산하에 사목부, 경리부, 비서실 등 3개 부서를 둔 1국2부1실 체제를 갖췄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교구의 발전과 함께 확대 개편해 나갔다.

교구청사도 넓혀갔다. 교구청은 1974년, 1980년, 1982년 1984년 4차례에 걸쳐 증축했다. 1988년에는 연면적 1308.77㎡ 규모의 교구청 별관도 신축했다.

교구청이었던 이곳이 문화원이 된 것은 1997년의 일이다. 1991년 교구청 조직은 사무처와 사목국, 관리국, 성소국, 사회복지국, 교육국으로 1처 5국 체제로 확장됐다. 교구는 앞으로도 교구와 교구청 조직이 발전해 갈 것을 예상하고 1991년 장안구 정자동에 새 성당 부지와 교구청 신청사 예정부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화서동 교구청사를 청소년들을 위해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1997년 2월 교구청사 이전이 시작됐고, 교구청사의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원이 탄생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