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우리’ 한 민족 /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3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2015년 가을,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유럽본부에서는 제30차 인권이사회가 진행 중이었다. 여러 안건과 각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의 참여 업무를 담당하던 나에게 일본의 한 단체가 회의 발언 신청을 하러 다가왔다. 그들은 당시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발언을 하려 했다. 마침 오전 회의가 끝나가고 있었고 오후 회의주제와는 연관성이 없어 발언권이 주어질 수 없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시민단체는 국가의 의견과 방향을 같이 하기보다는 국가의 정의 실현과 인권 증진을 촉구하는 역할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일본 단체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전하려고 멀리까지 왔다는 데 대해 내심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휴식을 갖는 틈에 그들을 따라 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발언내용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작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들이 말한 내용은 현재 서울에서도 집창촌 철거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도 그처럼 돈을 벌기 위해 지원한 것이라는 내용이 그 골자였다. 순간, 나의 눈빛이 확 달라졌는지 동양인의 외모가 확연한 나에게 국적을 물었다. 내가 한국인인 걸 밝히자 묘한 기운이 흘렀고, 객관적으로 회의 진행을 도와야 하는 입장인 나는 오후 회의에 관련한 안내를 하고 씁쓸하게 뒤돌아섰다. 오후 회의가 시작되자 그들은 앞서 말한 내용의 성명서를 제출하고 시민단체석이 아닌 일본 대표부 자리에 가서 같이 앉아 인사를 건네며 담소를 나눴다. 회의 주제와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서 당연히 기각될 줄 알았던 그들에게 어찌 된 일인지 발언권이 주어졌고, 이런 상황에 처하니 이번 인권이사회에 참여하려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할머니들의 건강상 이유로 함께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웠다.

되돌아보면 이 시기는 2015년 12월 28일에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문에 대한 일본과 대한민국 정부 당국 간 접촉이 있던 시점이었고, 그래서인지 우리 대표부는 그들의 발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런 억울하고 답답한 침묵에 명쾌한 위안이 됐던 것은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 대표부의 발언이었다. 북한 인권논의에 대한 반박에 포함돼 있기는 했지만, 성노예 범죄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본 아베 정권의 시도를 콕 집어 강하게 비판한 국가는 북한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한 민족이라는 건가.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아픔을 겪어 그 동일한 상처를 지닌 한 민족, 몸은 나뉘어 있어도 항상 맘으로 그리워하는 한 형제가 실로 오랜만에 ‘우리’가 돼 만났다. 올림픽이라는 세계 평화의 잔치를 위해 화합하는 마음을 낸 우리다. 우리의 공존이 우선돼야 이 땅에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열린 세상’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만남이 ‘하나 된 열정’으로 이어져 지구의 평화로운 공존을 향한 소중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