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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미디어-소통-공감, 교회는 너무 모른다 / 김지영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4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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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요즘 인류사회에서 새삼 크게 떠오르는 큰 가치 중 하나다. 정치·경제·사회·국제·과학·예술·종교 등 그 어느 분야라 할지라도 공감을 배제하곤 시대정신을 담았다고 하기 어렵다.

공감은 제대로 된 소통에서 비롯한다. 또 이러한 소통은 혁명적으로 확장하고, 깊어지는 미디어라는 도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지를 다시 배워야 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공감지수’는 사람의 능력과 품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등장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미디어-소통-공감에 대해 너무 모른다. 거의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교회는 언제나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며, 세상과 대화한다. 이를 분명하게 밝힌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회칙 「찬미받으소서」, 사도권고 「복음의 기쁨」도 이 사목목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가톨릭사회교리 101문 101답」 바오로딸)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몇 달 전, 주교회의는 산하 매스컴위원회의 명칭을 ‘사회홍보위원회’로 바꾸었다. 하필 왜 시대조류에 걸맞은 ‘사회소통’을 피하고 과거지향적인 ‘사회홍보’를 택했을까?

필자의 생각에 이 용어는 애초부터 의도된 오역이었다. 이미 반세기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공의회 문헌 ‘사회매체에 관한 교령’에서 ‘사회적 소통도구인 미디어’(the media of social communication)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소통(communication)을 우리 교회는 줄기차게 ‘홍보’라고 번역해왔는데, 마침 소통의 시대라는 이때에 다시 ‘홍보’로 되돌아간 것이다.

‘홍보’나 ‘PR’은 ‘내가 알리고 싶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잘 전한다’거나 시속의 비유처럼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린다’는 뜻. 일방향 소통 시대에 애용되다가 쌍방향·다방향 소통시대인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돼버린 용어다. 미디어-소통-공감이라는 시대적 징표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식이 미치지 못하니, 그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현실들이 나타난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시립 희망원의 충격적 인권실태가 드러났을 때, 시중 언론매체를 통해 이미 그 내용이 세상에 다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회매체도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거나 깊이 있는 대안을 제시한 곳이 없었다. 노조활동 방해나 부당한 내부거래 의혹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된 인천국제성모병원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교회매체는 일반 매체와 성격이 다른 기관지 성격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소금의 역할은 어떤 매체에게나 본연의 사명이다. 교회매체가 교회의 자기 성찰·자기 쇄신에 앞장서지 않는다면, 또 일방적인 교회 ‘홍보’ 나 ‘PR’에만 몰두한다면, 소금이 없는 교회는 썩기 쉽지 않을까.

대구시립 희망원 사건과 인천 국제성모병원에 대한 교회매체의 보도태도는 우리 교회가 소통과 공감보다는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것만 알린다’는 구시대의 홍보 프레임에 갇혀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회매체의 앞날과 관련한 대담자리에서 “다양한 뉴 미디어들이 일상생활에 정착한 오늘날, 청년들에 대한 전교를 위해서라도 뉴미디어들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고위직 신부님이 “우리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건 하지 말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굴해 전하는 데에 신경 쓰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평신도들은 이럴 때에 심한 갈등을 느낀다. 사실 아무리 특정 분야 전문가의 의견일지라도 신부님이 부인하면 올바르지 못한 것이 되는 게 현실이다. 흔히 말로는 평신도의 역할을 떠받들지만, 현실적으로 ‘교회의 주인인 신부님들’이 계시므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끼기 일쑤다. 특히 빠르게 변하고 있는 미디어의 세계에 관해서는 더하다.

그야말로 ‘시대의 징표’에 비해서는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신부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교회 지도부의 인식변화와 함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신학교 필수 교과목으로 편성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