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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남북 대화와 교회의 노력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8-01-16 수정일 2018-01-16 발행일 2018-01-21 제 307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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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훈풍부는 한반도, ‘평화의 씨앗’ 싹틔우자
교회, 민족화해와 일치 기도
한 형제자매임을 강조하며 조건 없는 대북 지원 펼쳐
개성공단 재개 촉구하는 등 한반도 평화 위한 실천적 노력

70년을 훌쩍 넘어선 분단의 세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를 계기로 한반도에는 새로운 평화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 이를 계기로 남북 화해를 위해 교회 안팎에서 이어진 평화를 향한 발자취를 돌아보고 ‘평화의 사도’로서 새로운 다짐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 우선 만나야 한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올해로 분단 73년을 맞는 한반도를 위한 가장 절실한 기도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우선 만나야 한다.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1월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신년사를 발표하며 “여건이 갖춰지고 전망이 선다면 언제든지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하루 전인 1월 9일에는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남측 조명균(안드레아) 통일부 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대표로 한 회담은 2년여 만에 열린 남북 고위급 대화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회담에서 남북은 ▲평창 동계올림픽 실무회담 ▲군사당국회담 ▲제2차 고위급 회담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 재개, 개성공단 재개 문제는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모처럼 성사된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이 결실을 보려면 남북 대화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71년 남북이산가족 찾기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린데 이어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다. 통일문제에 관한 남북 간 최초의 합의인 이 성명은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통일은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통일원칙을 천명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한반도에 평화통일론을 정착시켰고 이후 남북한 대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자 실존하는 2개 국가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평화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관한 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같은 해 12월 13일 서울에서 남측 정원식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 서명으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2000년 6월 13~15일 이뤄진 김대중(토마스 모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관계에서 획기적인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성과인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대결관계를 실제적으로 해소하고 협력을 확대하는 토대가 됐다는 면에서 남북 대화 역사에서 최대의 결실로 여겨진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2007년 10월 2~4일 북한을 방문해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10·4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은형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는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정신에 따라 교회는 북한과 공식적으로 접촉을 시작할 수 있었고 각 교구별로 민족화해위원회가 출범했다”며 “교회가 1990년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 교류의 영향과 결과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정부가 펼칠 남북 대화 방향성에 대해 “민간과 종교 측의 대북 지원·협력이 정부가 할 수 없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년간 막혔던 민간·종교 분야의 대북 협력 규제를 풀어 남북 대화를 ‘투 트랙’으로 가져가면 오히려 교회가 정부 당국의 교류·협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새 정부에서 교회의 대북 역할론을 강조했다.

1991년 9월 29일 도라전망대에서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평화통일기원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지정기탁제 이후 1998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기탁자 이름이 적힌 옥수수를 북에 전달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평양을 방문한 한국 주교단이 2015년 12월 3일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성가대원들과 함께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한국교회가 기울여온 노력

한국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시대의 징표로 자각하고 ‘평화의 사도’로서 발걸음에 무게를 더해 왔다.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 분단의 벽을 허물어왔다. 한국교회는 1965년 주교회의에서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공식 제정하고 북녘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북한 복음화를 위한 초석을 닦았다.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시작된 기도운동은 1992년부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명칭을 변경,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역시 1995년부터 매주 화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북녘 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만남조차 금기시 되던 상황에서 교회는 남북이 한 형제임을 천명하고 먼저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민족화해의 돌파구를 만들었다.

“북한의 식량지원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성사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 동포인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진정 정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요 자매인 우리들은 북한의 식량 지원에 그 어떤 조건도 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995년 6월 1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대북지원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교회는 수해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북한에 1995년 북녘 동포를 위한 첫 성금을 전달했다.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오기 위한 교회의 선도적인 노력은 남북 분단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신앙적 결단이었다.

2015년 12월 1~4일 한국 주교단은 남북 평화와 화해 인식 확산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소속 주교단은 북한 조선카톨릭교협회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한 노둣돌을 놓았다. 방북 기간 동안 주교단은 사제 파견 문제를 비롯해 장충성당 보수 등 남북 화해의 물꼬를 터나갔다. 이에 앞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같은 해 10월 25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평화통일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평양의 천주교 관련 시설을 둘러보며 남북 교류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화해와 평화를 향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교회는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자 우리 정부는 2016년 2월 10일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교두보였던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한다. 같은 해 3월 6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는 공동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평화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