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딸과 함께 ‘신과 함께’를 보고

이연세 (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1-09 수정일 2018-01-09 발행일 2018-01-14 제 3078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아빠! 우리 영화 보러 갈래요.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함께 갈 친구가 없어요.” “어떤 영화인데 우리 딸이 그렇게 보고 싶을까.” “‘신과 함께’라는 영화예요. 죽은 사람이 일곱 개 지옥을 거치며 죄의 심판을 받는 내용이래요. 요즘 잘 나가던 ‘강철비’를 밀어내고 예매 순위 1위예요. 아~빠!, 가~자. 예매는 내가 할게. 응!” 학기말 시험을 마친 딸이 슬며시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면서 코맹맹이 소리를 했습니다.

영화는 한 소방관이 불이 난 건물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떨어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소방관은 어린아이는 살리지만 정작 본인은 매트리스 옆 아스팔트에 떨어져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합니다. 그리곤 3명의 저승차사들의 안내를 받아 49일간 일곱 개의 지옥을 거치며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일곱 가지의 죄를 묻는 심판을 받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꼭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내 삶의 여정이 투사됐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이승을 떠나 저승의 심판대에 섰다면 ‘나는 일곱 개의 지옥을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두려움과 함께 극심한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불교에서 죽은 사람이 49일간 거친다는 일곱 개 지옥은, 요한묵시록을 연상시켰습니다. 인간들의 죄악에 분노하신 하느님은 일곱 대접을 든 일곱 천사를 세상에 보냅니다. 천사들이 차례로 들고 있던 대접을 땅에 쏟자, 지독한 종기가 생기기도 하고 뜨거운 불로 태우는가 하면 번개와 천둥이 울리면서 지진이 일어나 세상을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단죄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저 또한 지옥에 떨어질 만큼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살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과 말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주었던가요. 게으름은 물론이고, 순간의 잘못을 넘기기 위해 기지(奇智)라는 미명 하에 임기응변의 거짓 증언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천국은 고사하고 펄펄 끓는 유황불에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끔찍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며 양볼이 불그레하게 상기된 딸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아빠! 인터넷 평가만큼 재미는 없었지만, 게으름이나 거짓말 등 하찮은 것도 큰 죄가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어머니를 꼭 만나야 합니다! 어머니께 전할 말이 있어요!”라고 울부짖을 때 눈물이 났어요. 그동안 엄마한테 심하게 한 것이 후회가 되네요.” 영화 ‘신과 함께’는 부녀(父女)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줬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새로 맞이한 새해!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느님 보시기에 선(善)한 모습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해봅니다.

이연세 (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