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나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 박태웅 신부

박태웅 신부 (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
입력일 2018-01-09 수정일 2018-01-09 발행일 2018-01-14 제 307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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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한 성지에서 열린 사제 피정 중에 고해성사를 보는데,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교회가 신부님의 한평생을 보장해줬는지 아십니까?”

‘한평생을 보장해줬다?’ 자주 생각나고 기억나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성직. 그 자체로 이미 지극히 거룩하고 고귀한 것으로, 성직 안에서 주어지는 은총은 또 얼마나 많고 많은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그것은 세상의 어떤 그릇으로도 담아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나는 정말 분에 넘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나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죠. 의식주부터 시작해서 아파서 병원을 가도, 나이를 먹어 늙어도, 심지어 죽어서 장례까지도 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교회가 책임지고 돌봐줍니다. 성직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세상에 이런 보장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어디 또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사람들이 항상 나라살림을 말할 때 그 소중한 원천인 국민의 세금을 이야기하듯이,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받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신자들 한 분 한 분의 정성 어린 봉헌금으로 마련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넘치는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항상 부당하고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때 신부님께서는 제게 ‘교회가 신부님에게 성직을 통해서 수행하기를 명하는 일들을 항상 열심히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을 통해서 저에게 주어진 그 일들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임의의 내 생각으로 만들어낸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착한 목자로서, 맡겨진 양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양들의 구원을 위해 힘쓰는 일, 당연히 그 일은 나의 사적인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사제로서 교회가 똑같이 예수님의 명에 따라, 그 모범에 일치하여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교회의 일, 즉 기도(미사봉헌, 성무일도 등)와 활동(사랑실천)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때 그 신부님은 많은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성직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저에게 일깨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항상 많이 부족하지만 내 생활의 중심에 이런 생각이 바로 서 있는지를 자주 되돌아보고 반성해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우리 신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자들도 내 일상의 모든 것이 진정 하느님의 사랑(은혜와 축복)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과연 그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혹, 믿음 따로 실천 따로, 아직 믿음이 부족하고 약해(?) 정말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삶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거리감이 먼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안타깝게도 사랑을 거스르고 구원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이런 생각의 중심을 충만히 비추며 채우고 있는 하느님의 뜻에 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내가 만들어낸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뤄지기를 원하시는 그 뜻 말입니다. 또 그 뜻에 어울리지 않는, 해서는 안 되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항상 느끼듯이 이 실천이 힘도 들고 쉽지는 않지만,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이 신앙의 근본을 자각하고 잊지 않기를 바라며.

박태웅 신부 (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