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동방박사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 김창선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8-01-02 수정일 2018-01-09 발행일 2018-01-07 제 307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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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 60,1-6 에페 3,2.3ㄴ.5-6 마태 2,1-12)
구세주 탄생 모든 민족에게 알리는 신비
형제애와 자비로 주님께 경배 드리자

오늘 맞이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Epiphany)은 성탄의 기쁨을 새롭게 합니다. 이 축일은 세 동방박사(Magi)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방박사는 이방인입니다. 이방인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림으로써 예수님이 구원의 메시아이시고, 장차 만민의 왕이 되실 분이심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동방박사들의 출신지가 어디인지는 막연하지만 새 별을 보고 먼 길을 찾아온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헤로데 임금과 유다 지도자들에게 묻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헤로데 임금과 지도자들은 물론 온 예루살렘이 화들짝 놀랍니다. 헤로데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하지만 박사들이 경배하러 가는 길에 동행하지는 않습니다.(마태 2,1-12)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고 전합니다. 동방에서 본 별이 박사들을 앞서가다 아기가 있는 곳에 멈춥니다. 그들은 이 별을 보고 무척 기뻐합니다. 그 집에 들어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경배를 드린 후 보물 상자를 열어 예물을 드립니다. 그 예물 중 황금은 왕의 신분을, 유향은 신성을, 몰약은 인성을 상징합니다. 박사들이 드린 예물에서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분임이 드러납니다.

박사들이 찾아온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 산악지대에 위치한 ‘거룩한 도성’입니다. 예루살렘은 또한 주님에 대한 충실한 믿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약 10㎞에 위치해 있는데, ‘하느님의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이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서 일용할 양식인 빵을 주시기에 베들레헴은 일명 ‘빵 가게’(house of bread)라고도 불린답니다.

헨리 시돈스 모브레이 작품 ‘주님 공현’.

최근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소식을 하나 곁들입니다.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가난한 목동들이 천사의 귀띔을 듣고 기쁨에 넘쳐 가장 먼저 달려와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성탄 팔일 축제 동안 목동의 마음으로 새벽 미사에 참례하여 예수님께 경배를 드린 ‘하느님의 집’ 성전이 제겐 아기 예수님께서 오신 베들레헴입니다.

제가 본 외양간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맑은 밤하늘 무수한 은빛의 별들이 빛납니다. 베들레헴 성벽에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흰 백합과 붉은 포인세티아와 장미꽃으로 수놓은 하늘의 천사와 군대들이 찬미노래를 부릅니다. 배내옷을 입은 아기예수님이 흰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계십니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 요셉이 성자를 돌보고 계십니다. 동방박사들이 바로 이곳에 와 경배를 드립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통해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성탄은 어두운 세상을 참 빛으로 밝히려고 ‘말씀이 사람 되어 오신’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왕의 자리를 내려놓으시고 산골 외양간에 작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심은 참으로 겸손한 모습이십니다.

주님 공현은 신성과 인성을 갖추신 구세주의 탄생을 모든 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신비입니다. 구원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오늘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려 험난한 길을 찾아온 동방박사의 마음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습니다.

구원의 메시아를 갈망했던 박사들은 밤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별을 보고 모든 것을 버린 채 기쁜 마음으로 ‘거룩한 도성’을 찾아옵니다. 그들의 앞길을 별이 인도해주어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을 갈망하고 그리스도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갈 길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갈망할 때, 신앙의 빛이 인도해 줍니다. 세상의 화려한 불빛이 참 행복의 길을 열어줄 순 없으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은 그 길을 인도해주시기에 기쁨이 샘솟습니다. 주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길이요 평화를 구가하는 삶입니다.

베들레헴의 천진한 목동과 이방인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의 숨소리도 들릴 지척에서 무릎을 꿇은 채 주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어 구유에 누워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이 겸손한 마음을 본받고 싶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겸손의 아기요 평화의 아기로 오신 구세주께 경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새 노래로 주님을 찬미하고 형제애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선교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겠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권과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은 박사들이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봉헌하면 어떨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곧 애덕입니다. 우리는 모름지기 하느님과 이웃들로부터 넘치는 사랑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교황님께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의 관심과 행동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내민 자비의 손길이 하느님께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주님 공현은 앞으로 세례축일과 가나의 혼인잔치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는 세례가 필요치 않음에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당신을 겸손히 낮추시어 세상에 구세주의 모범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가나의 기적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취하여 내 몸에 피가 되어 새 삶을 사는 성사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여 빛 속을 걸으며 언제나 기뻐하고, 임마누엘 주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랑의 삶이 ‘그리스도인답게’ 평신도 희년을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1테살 5,16-18)인 줄 압니다.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