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기획] ‘헌법 개정’ 관련 교회가 낼 목소리는?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7-12-26 수정일 2017-12-27 발행일 2018-01-01 제 307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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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헌법에 교회 가르침 스며들도록 힘써야

한 나라의 헌법은 그 나라의 정체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근본이 되는 법이자 최고법이다. 2018년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개정한 뒤 31년째 바꾼 적이 없어 이제는 ‘낡은 헌법’이 된 대한민국 헌법을 개정하는 중대한 시기다. 새해에는 곧 개헌 논의가 전면으로 부상할 것이다. 개헌 과정에서 교회가 낼 목소리를 알아봤다.

한국교회 역시 생명과 노동,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헌법에 직간접으로 스며들도록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 사진은 10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형집행 중단 20년·제15회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선에서 당선되고 나서도 2018년 6월 개헌 공약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현재 국회는 여야가 참여하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헌법 개정 논의를 해나가고 있지만 논의의 중심은 정부형태와 권력구조에 맞춰져 있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헌법에 도입된 지 30년이 넘었고 대통령 1인에게 지나친 권력 집중과 단임제의 필연적 결과인 임기 후반 레임덕 발생 등의 문제점을 이번 개헌에서 반드시 개선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변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국민의 기본권 규정 부분으로 논의가 확대되면 사회 각 주체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개정 헌법에 반영하기 위한 각축을 벌이게 된다. 한국교회 역시 생명과 노동,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헌법에 직간접으로 스며들도록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

개헌을 앞두고 가장 구체적으로 교회 목소리를 내는 곳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정수용 신부)라고 할 수 있다. 서울 노동사목위는 현행 헌법상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근로에서 노동으로 헌법 제32조 개정운동’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 중이다. 현행 헌법에는 제32조와 제33조에 근로의 권리, 근로 3권 등을 규정하면서 ‘근로’, ‘근로자’로 표기하고 있다.

정수용 신부는 ‘근로’(勤勞)라는 용어에 대해 “근로는 ‘근면하게 일한다’는 뜻으로 일을 시키는 사람, 사용자의 관점에서 채택됐다고 볼 수 있다”며 “노동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노동분야 전문가들은 1945년 남북 분단에 이어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북한에서 ‘노동’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자 대한민국의 헌법 기초자들이 의식적으로 ‘노동’을 회피하고 ‘근로’를 헌법 용어로 도입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 신부는 “냉전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만큼 굳이 노동이라는 단어를 안 써야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의 체제 우월성이 이미 입증된 상황에서 북한에서 주로 쓰인다는 이유로 노동이라는 단어를 헌법에 도입 못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현행 헌법상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꾸자는 서울 노동사목위의 캠페인 스티커.

교회문헌에는 ‘노동’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은 “노동은 인간과 인간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시이며,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 움직이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리고 이 표시는 인간의 내면적 특성을 결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형성한다”고 노동을 정의하면서 노동이 인간 본질을 형성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교회를 비롯해 불교와 개신교, 원불교 등도 법적 폐지를 요구해 온 사형제 역시 올해 헌법 개정 논의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형법 등 법률에는 사형제가 형벌의 한 종류로 명시돼 있고 헌법(제110조 제4항, 비상계엄 하에서 단심제에 의한 사형 선고 금지)에도 사형제가 등장한다. 사형제는 그동안 법률 개정을 통해 폐지하는 방안이 주로 제시됐지만 헌법 차원에서 사형제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형집행 중단 20년·제15회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형제는 폐지해야 한다”면서 그 방법으로 “헌법 개정 과정에서 뜻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과 사형제 폐지를 공론화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찬반 논란이 뜨거운 낙태죄 폐지 문제와 관련해 ‘생명권’을 개정 헌법에 명문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헌법에는 ‘생명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조항에서 생명권이 도출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견해다.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면 낙태죄 폐지 반대에 가장 앞장서는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는 생명권을 명문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점차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농민단체들이 전개하고 있는 ‘농업 가치 헌법반영 국민공감 운동’에 가톨릭농민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등 가톨릭교회 단체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정현찬(미카엘) 회장은 “현행 헌법에 농업에 대한 조항들(121~123조 등)이 있지만 농업 가치를 규정한 조항은 없어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농업 가치를 헌법에 도입하자는 서명운동을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