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욕망이 아닌 희망 /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7-12-26 수정일 2017-12-26 발행일 2018-01-01 제 3076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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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펑펑 내린다. 나는 눈만 내리면 잔뜩 신나서 밖으로 뛰쳐나가곤 해서 강아지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마침 휴가를 낸 날이라 남산둘레길을 따라 소복이 쌓인 눈을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게 밟으며 걸었다. 눈발이 얼마나 세차게 뿌리는지 금세 속눈썹 위로 가득히 쌓이고 입안으로 들이쳤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느낌마저 너무나 처절히 아름다워서일까. 갑자기 눈송이가 서럽게 아픈 강철비(Steel Rain)로 오버랩이 돼 눈물이 솟구쳤다.

얼마 전 지인이 준 예매권으로 막 개봉한 ‘강철비’라는 영화를 보았다. ‘강철비’란, 최근 사드(THAAD)를 우리나라에 대거 판매한 미국의 록히드마틴사가 개발한 다연장(MLRS)미사일을 지칭하는 말이다. 1992년 걸프전 당시 미군이 이라크 공격 때 사용했는데, 강철로 된 총알이 소낙비처럼 마구 퍼부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하는 것을 보고 이라크 병사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영화 초반에서 개성공단 위로 뿌리는 강철비와 철우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남과 북의 두 주인공을 이중적 의미로 부각시킨 ‘강철비’는 최근 한반도 전쟁위협과 북한 핵문제의 실제 상황을 다뤄 그저 허구로만 볼 수는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한다. 게다가 각계의 학문적인 주장과 정치적인 상황을 적절하게 배치해 더욱 실감이 났다. 특히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받는다’는 극중 대사는 남북한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자주 하는 말 그대로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과 슬픔을 이용하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점점 더 넓게 퍼져 나간다. 약한 자를 누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습성은 남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팽배해져서 그러한 악용이 당연한 생존원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분단된 한반도를 이용해 무기를 팔아 이익을 챙기고 패권을 잡으려는 주변 국가의 욕망에서부터 선거철마다 나오는 케케묵은 종북논란과 단체를 비호하기 위한 하급 직원들의 희생, 학교폭력 등 그 예는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하다. 인간의 욕망은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으며 어느 정도가 채워져야 과연 만족할 수 있단 말인가.

새해가 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품고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어쩌면 나의 희망이 더러운 욕망으로 굴절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이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난다. 문득,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내고 싶은 내 욕망은 검은 밑바닥을 드러내 보기가 좋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지나간 발자국 위에 다시금 살포시 눈이 내려앉은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인간의 욕망이 어쩔 수 없는 본연이라면, 그 위에 용서와 은총으로 내린 축복의 눈이 더해져야 그나마 아름다운 희망으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다가오는 새해가 욕망이 아닌 희망으로 가득 차기를 소망한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