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평등? 술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 하종은

하종은 (테오도시오)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입력일 2017-12-19 수정일 2017-12-19 발행일 2017-12-25 제 3075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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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평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바야흐로 남녀평등의 시대이다. 이는 술자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여, 예전에 비해 여성의 음주를 부추기는 분위기다. 술 광고에 여성이 자주 등장하고, 순한 소주 열풍이 부는 현상은 단순히 술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여성이 주류 산업의 마케팅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이 평등의 시대에 알코올은 전혀 남녀를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여성이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남성에 비해 훨씬 빠르게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손상된다. 중독으로 진행되는 속도 또한 현저히 빠르다.

이렇게 아차 하는 순간 평범한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중독의 늪에 빠진다. 도움의 손길이 간절하고 절박하지만 알코올이 여성에게 가혹한 것 이상으로 우리들 또한 중독에 빠진 여성에게 가혹할 뿐이다.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회복을 돕는 헌신적인 아내들과 대비되게, 여성 중독자가 힘들게 술을 끊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냉대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여성이 중독이라는 병에 걸리는 것을 마치 도덕적 타락이나, 여성으로서의 소양을 상실한 것으로 여기는 편견이 아직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실상 평범한 여성들이 비교적 흔하게 걸릴 수 있는 질환 중 하나가 ‘알코올 사용 장애’인데, 이 질병만큼은 치료를 위해 도움을 받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죄 없는 사람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무시하고 그저 단죄하며 돌을 던진다고 할까, 외로이 돌을 맞으며 버티는 그녀의 고통이 꼭 개인만의 잘못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는 여성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주님의 기적이 멀리 있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치유의 기적을 목도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던 여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은 실로 감동적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분노와 무력감을 내려놓고,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이를 인정하여 도움을 청하는 순간 밑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저는 제가 가족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어요. 모두 저를 냉대하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치료를 시작하면서, 어쩌면 가족들을 외면했던 것이 나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금단 증상을 치료하고, 적절한 약물을 복용하고, 기저에 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다 보면 술에 의지해 바라보던 세상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술로 초래된 절망이 서로를 겨누는 분노로 바뀌었을 뿐이다. 회복의 과정에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면, 가족에 대한 분노 또한 서로를 위로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승화될 수 있다.

최근에는 여성에게 특화된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알코올 중독 병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개방형 환경에서 여성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으면 치료를 유지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재활 프로그램은 물론, 가정으로 섣불리 돌아가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성들을 위한 거주시설도 있다. 여성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 또한 치료 방법이 정립되어 있고, 이미 회복의 길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 술이 주는 거짓 위로를 포기하고 진정한 치유와 인간다운 영적 회복을 바라고 희망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번 호를 끝으로 ‘방주의 창’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분들과 애독해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종은 (테오도시오)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