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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주일 특집] 나를 위한 나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12-12 수정일 2017-12-14 발행일 2017-12-17 제 307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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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할 때,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많아”
 장수와 건강, 행복 느끼는데도 도움
 나눔의 습관은 성공 이끌 확률 높아
 가진 것이 없어 나눌 수 없다?
 한 푼 두 푼 정성 모여 큰 사랑으로  교황,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오늘날 무관심한 사회 모습 우려

‘나눔’은 남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나’의 나눔을 통해서 ‘남’이 나눔의 수혜자가 된다는 점에서, 나눔은 남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눔’이 가져다 주는 충만한 기쁨과 보람은 나의 것이기에 나눔은 곧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선주일을 맞아 과연 ‘나를 위한 나눔’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 나눔,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나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한 사람은 없다?

대부분 사실이다. 놀랍게도 ‘나를 위한 나눔’의 보람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 때문에 한 번 ‘나눔’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된다.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도 나눔을 습관처럼 하기에는 충분하다.

박정호(바오로·51·수원교구 권선동본당)씨는 2014년 가톨릭신문을 통해 아프리카 부룬디의 참혹한 삶을 알게 됐다. 곧바로 형편껏 성금을 보냈고, 이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 소식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전쟁 소식이 들리면 안타까웠고, 굶주린 아이들 사진을 보면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다 매달 1~3만원씩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아름다운 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을 통해 소액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언제부터인지 기부가 습관이 됐다”며 “많이는 못하지만 항상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적은 돈이라도 나눌 준비는 돼 있다”고 말했다.

고(故)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아프리카 톤즈에서 1년 남짓 봉사를 하고 돌아온 김동길(요한사도·27·인천교구 계산동본당)씨는 여전히 톤즈의 일상을 꿈꾼다. 진한 봉사의 체험이 지금도 그의 마음을 어려운 이웃들에게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그걸 압니다. 봉사는 항상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습니다.”

나눔의 기쁨을 체험한 이들은 한결같이 나눔을 통해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많고, 남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미국의 학자 찰스 엘리엇(Charles William Eliot, 1834~1926)은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만족의 길은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박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은 어떻게 봉사할지를 찾고 발견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마더 데레사 수녀는 “나눔은 우리를 진정한 부자로 만들어준다”고도 말했다.

■ 나눔은 장수의 비결, 이거 실화?

정말 나눔이 나를 위한 것일까?

첫째, 나누면 우선 마음이 배부르다. 미국의 내과의사 앨런 룩스(Allan Luks)는 저서 「선행의 치유력」(The Healing of doing Goods, 2001)에서 ‘봉사자의 희열(Helper’s High)’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마라토너가 느끼는 희열(Runner’s High)에 빗대어 사용한 용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주일에 8시간 이상 봉사를 하는 사람들 3000명 중 95%가 정서적 포만감을 경험했다.

둘째, 봉사는 육체적 건강을 선사한다. 이른바 ‘마더 데레사 효과’(Teresa Effect)이다.

1998년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돈을 주고 노동을 시키고, 한 그룹은 봉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봉사 참여 학생들의 면역 기능이 크게 증가했다. 사람의 침에는 나쁜 병균과 싸우는 면역항체 IgA(Immunoglobulin A)가 함유돼 있다. 봉사 참여자들에게서는 이 항체가 급격하게 증가, 면역기능이 크게 강화됐다. 특히 데레사 수녀의 전기를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IgA 수치가 50% 이상 높게 나타났다.

그 외에도 나눔과 봉사가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는 수없이 많다.

2003년 미국 미시건 대학에서 5년에 걸쳐 부부 423쌍을 대상으로 한 조사, 영국 BBC 방송의 실험적 다큐멘터리 ‘2009 행복 보고서’ 등에서도 봉사는 장수와 건강, 행복을 느끼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알코올 중독 치료에도 효과가 있었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의대 연구에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중독자들은 중독에서 쉽게 벗어난다는 결과가 나왔다.

■ 나눔은 신앙의 실천

셋째, 나눔은 성공으로 이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와튼 스쿨 애덤 그랜트 교수는 남을 배려하고 일단 베풀려는 ‘기버’(giver)들은 직장에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주어진 일을 잘 하지 못하지만, 결국은 성공 사다리의 상층에 올라서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저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2013)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가 지쳐버리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은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정기적인 봉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나눔의 습관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넷째, 나눔은 신앙을 성숙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세계의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무관심의 세계화’를 지적했다. 교황은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낼 것을 권고하며 자비, 즉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신앙인의 소명을 다하자고 권고했다. 결국 신앙은 사랑의 실천이며, 그것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없어서 못 나눈다? 흔히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직접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23일 향년 91세로 선종한 김군자(요안나)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았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평생 조금씩 조금씩 모은 것을 아름다운 재단과 수원교구 등에 모두 전달했다.

김 할머니는 늘 “내 옷을 사고 맛있는 것을 사먹기는 아깝지만 남에게 주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2011년 9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우수씨는 가진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말 가진 것 없는 이웃이었다. 그는 고아로 태어났고, 가출과 노숙, 구걸 생활을 했으며 전과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음식 배달로 버는 월급 70만원으로 5명의 어린이를 후원했다. 사망 후 받을 보험도 어린이들 명의로 가입하고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이들의 모범은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눌 수가 없다는 변명을 무색하게 한다.

실제로 이웃을 돕는 이웃은 오히려 가진 것이 적은 이들이다. 가톨릭신문이 게재하는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정성을 모아 전달하는 코너다. 그런데 성금을 보내는 독자의 절반 이상은 3만원 이하의 소액 기부자다. 1, 2만원이 대부분이고 5000원에 정성을 담아 전해주는 독자들도 있다. 그들의 작지만 꾸준한 나눔은 병들고 죽어가던 이들을 수없이 일으켜왔다.

광주대교구 목포 상리사회복지관에서 무료급식을 받는 어르신들은 한 푼 두 푼 모은 성금을 스리랑카의 가난한 학생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한 끼 식사를 복지관 무료급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뜻으로 매달 1000원씩을 모았다.

가난해서, 가진 것이 적다는 것이 남을 돕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는 해마다 12월 자선주일에 “가난한 이들이 외치는 초대를 외면하지 맙시다!”라면서 나눔을 권고한다. 가난한 이들의 외침은 우리에게 ‘초대’다. 나눔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