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기다림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7-12-12 수정일 2017-12-12 발행일 2017-12-17 제 307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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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만 셋인 집안에서 자랐다. 자매끼리 싸우는 일이 잦지는 않았지만, 가끔 티격태격할 때면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너희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게 가장 좋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새겨들으려 하면서도 내심 우리가 다투지 않도록 교육하기 위해서 과장하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돼 보니 정말 진심이셨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두 아이가 서로 웃고 떠들며 서로를 챙겨 줄 때다. 가장 싫은 순간 또한 형제끼리 놀리거나 작은 일로 다투는 그 반대의 경우다. 특히 자매들 사이에선 흔치 않은 우격다짐이 벌어질 때는 놀란 토끼마냥 멍해져서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그런 때는 정말 매를 들어야 하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절대 가하면 안 된다는 나의 교육 기조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똑같지 않으실까?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 싸워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그래서 주님 앞에 모두 똑같은 자녀인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창조하신 지구라는 이 집에선 얼마나 많은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가? 서로 죽이고 싸우는 수만 년의 역사를 통해 주님은 계속 싸우지 말고 화해하며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주님이 우리의 회심을 기다리며 말씀을 반복해도 소용이 없던 순간, 우리는 전쟁이라는 지구상의 끔찍한 역사들을 겪어 왔다.

교회는 이미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했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지나 곧 성탄을 맞이하게 된다. 구원의 기다림은 설렘이고 황홀한 기대이기도 하지만, 고통과 좌절 속에 간절히 기다리는 애끓음과 쉬이 오지 않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루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준비가 없는 기다림은 곧 물거품과 같이 사라지는 헛된 꿈에 불과하여 기름을 준비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고 문밖에서 슬피 우는 결과를 불러올 뿐이다.

한반도의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교회력뿐만 아니라 세상의 달력으로도 곧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서로 만날 희망을 품은 남과 북의 흩어진 가족들과 평화를 향한 온 국민의 염원이 흩어지는 모래알이 아닌 한반도에 새 집을 지을 토양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며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기다림은 서로 사랑하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당부를 실천해, 주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생명들끼리 서로의 존엄을 짓밟거나 해치지 않고 평화의 지평을 넓혀가며 주님을 만나는 매일매일의 삶이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