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 한반도 평화, 성찰과 이해에서 실마리를 찾다

서상덕 sang@catimes.krrn사진 박원희
입력일 2017-12-05 수정일 2017-12-05 발행일 2017-12-10 제 307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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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
적대와 증오로 엇갈린 시선 거두고 용서와 대화로 평화의 길 걸어가야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는 진정한 평화 이룰 수 없어 상호 신뢰와 대화가 필수
국가적 차원 넘어서는 ‘국제 공동선’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 필요성 강조
변증법적 과정에 근거한 평화통일 청사진 제시 눈길

짙은 안개 속에 던져진 한반도 평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달려온 평화의 사도들이 머리를 맞댔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가 12월 1일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연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은 한반도에 절실한 평화의 실재를 돌아보는 자리였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주제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결국 ‘성찰’과 ‘이해’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적대와 증오로 오랫동안 엇갈려버린 시선을 먼저 자신에게로 돌려 형제마저 백안시하는 색안경부터 벗어던지자는 의미다. 색안경에 익숙해져 형제가 겪는 고통에 눈감아버린 양심을 회복하는 데서 평화의 길을 다시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한데 모였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12월 1일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 축사를 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참가자는 지난 2000년부터 교황청 외교관으로 가톨릭교회의 안보 군축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해 온 아비 가넴 신부(63)였다. 지난해 6월까지 스위스 제네바 주재 교황청대표부 참사관으로, 교회 차원에서 안보 군축 문제를 담당해 온 아비 가넴 신부도 ‘성찰’에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찾았다.

첫 발제자로 나선 아비 가넴 신부는 ‘평화와 군축’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선의를 지닌 모든 이들과의 ‘연대’와 ‘형제애’를 통해 군비 경쟁 문제와 분쟁 해결을 위해 힘을 기울임으로써 평화를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가 마주앉아 ‘대화’하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대화의 길에 나서는 것조차 꺼림으로써 빚어지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오늘날 한반도 역사 안에 내재된 깊은 상처들을 치유하고 아픈 기억들을 정화시켜 나갈 수 있을 때 지속적인 화해와 상호 용서를 위한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려면 “자신부터 돌아보는 ‘성찰’이 이뤄져야 하고 이 성찰을 바탕으로 회개의 길로 나아갈 때 대화를 향한 첫 번째 단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행사 내내 그는 상호 신뢰와 진지한 대화 여건을 조성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원한 평화와 안전을 원한다면 그에 이르는 바른 길과 수단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힘과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을 피하는 것이 평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미국 샌디에고교구장 로버트 W. 맥클로이(Robert W. McElroy) 주교는 ‘평화를 위한 기반’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핵무기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빚어지고 있는 논란과정에 드러난 미국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간 북한이 보여 온 행동에 미국이 불만과 의심을 품을 만하더라도, 미국이 행하고 있는 보복 조치, 단계적 압박, 비난 등은 전쟁과 평화 윤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주교회의 국내 정의와 인간발전위원회(Committee on Domestic Justice and Human Development)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맥클로이 주교는 이번 행사에서 ‘국제 공동선’을 한반도 평화 문제를 풀어갈 개념으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갈수록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 오늘날 부상하고 있는 가장 심오한 인간 문제 대부분이 한 국가나 국가 내 조직의 능력을 넘어서기에 ‘국제 공동선’ 차원에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의를 가진 이들의 국제적 연대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그는 “세계화가 진전되며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국제 공동체의 목적, 국제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나갈 필요성이 요구되는 초국가적 문제들이 참된 국제 공동선의 중심 요소”라며 “‘국제 공동선’ 확인은 인류 공동체가 경쟁만 하는 이웃이 아니라 형제가 될 수 있는 과정을 찾고 추구하는 도덕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위험 없는 대안은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끊임없이 감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며 “북한과 대화하려는 한국 주교들의 노력은 대화와 발전에 앞장서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15세기 동안 가톨릭 전쟁 윤리의 중심 틀로 기능해 온 ‘정당한 전쟁’ 전통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량살상무기는 범위와 규모를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가 자신의 존재를 파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소유하게 했으며, 서로 싸우게 될 때 핵보유국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일궈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제시돼 관심을 모았다.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반도에서 평화통일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남북한 간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문명과 가부장주의 ▲‘한’과 ‘정’을 포함한 다양하고 고통스러운 경험 ▲민족적·인종적 동질성 ▲공용어 ▲민족주의 ▲절대적 가치들의 존중 등이 통일의 변증법적 과정에서 유용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2004년 건설된 개성공단에서 한반도 평화의 밑그림을 찾았다. 그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남북의 두 체제가 이상적 이념과 신뢰할 만한 정치 체제를 구축하는데 유용한 합의안”으로 ‘개성연합국’을 제안했다. 개성시를 포함한 남북 공동 산업단지를 영역으로 하는 ‘개성연합국’에 ▲평화 학교 ▲건강 및 인간생태학 학교 ▲환경 및 지속가능성 학교 ▲협치 및 사회정의 학교 ▲예술 및 역사 학교 등 5개 특성화 학교를 포괄하는 종합대학을 설립해 자생력을 갖춰나갈 때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표준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츠우라 고로(松浦悟郞) 주교(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남북 분단의 일차적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확인하고 오늘날에도 세계 평화에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통렬히 비판했다.

고로 주교는 자신이 참여했던 ‘무방비지역 선언 운동’을 소개했다. 제네바 조약에 따라 어떤 도시가 정하는 조건을 충족하고 무방비 지역임을 선언하면, 전쟁이 일어나도 그 지역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을 활용한 평화운동이다. 그는 한반도 38도선 주변의 비무장지대가 ‘평화구역’이 될 가능성이 있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상덕 sang@catimes.krrn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