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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국내 111곳 성지 순례를 마치며…

노정남(아가다·서울 한강본당)
입력일 2017-12-05 수정일 2018-03-28 발행일 2017-12-10 제 307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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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교구와 광주대교구 성지를 끝으로 저희 부부는 한국교회 111성지 순례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서 거의 3년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힘든 줄 모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10년 다녀도 다 못갈 것 같았는데 완주의 기쁨은 또 다른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순례 도장 찍고 축복장 받으려고 다닌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순례지를 더해 갈수록 자랑스럽게 다가온 신앙선조들의 삶은 순례길에 나서는 걸음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 우리의 본 고향은 천국이니 천주를 위해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만나기를 바라오.” 이 말씀은 기해박해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신 남명혁 다미아노 성인의 격려 편지 내용입니다.

순교자의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순교는 순교자 안에 현존하시는 구원과 직결되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성지순례를 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주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 그리고 주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의정부교구 마재성지에서 만난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일가의 순교 역사는 이 시대 한 가장의 믿음이 가족 모두를 성인으로 이끄심을 보여준 성가정 성지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마재성지 안내에서 ‘정약종의 가계도를 보면 정약전의 딸 정난주 마리아’라고 나오는데, 정약전의 딸이 아닌 ‘정약현의 딸’이 맞을 듯합니다.

정난주 마리아는 순조 원년 1801년 승정원의 기록에 의하면 본래 이름이 정명련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명련이 유배돼 노비로 살아갈 때 이름이 정난주였던 것입니다. 또 정명련의 여동생은 복자 홍낙민 루카의 아들인 복자 홍재영 프로타시오와 혼인하여 아들 성 홍병주, 성 홍영주의 어머니 정소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소사도 본래 이름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순교자로만 기록돼 있어 후손으로서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200년이 넘는 한국교회사 박해를 기록하기에는 자료도 부족하고 증거자도 다 떠나시어 어려움이 많을 줄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랑스러운 순교사이기에 늦게나마 바로잡는 게 후손된 도리라 여겨 용기를 내었습니다.

제주교구 용수성지는 김대건 신부님이 라파엘호를 타고 1845년 9월 28일 표착하신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페레올 주교, 다블뤼 주교, 김대건 신부 외 일행 13명이 표류하지 않고 제 시간에 도착했다면 포졸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잡혀서 참수 당했을 거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는 큰 은총을 느꼈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페레올 주교님과 다블뤼 주교님의 업적도 함께 만든 자료와 설명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 다블뤼 주교님은 순교의 마음으로 조선 땅에 오셨습니다. 조선교구에서 21년을 사목하고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밑바탕이 된 다블뤼 주교의 기록들이 103위 성인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자들의 면면을 보면 평신도가 대부분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주는 성지순례, 가기 전 자료를 읽어보고 가서 또 읽어보고 다녀와서 또 자료를 찾아보면서 신앙의 뿌리를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하느님과 나의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두 가지를 꼭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과 순교자의 삶과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서 주님 대전에 갈 때까지 거듭나고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변화된 자녀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한국교회사와 성지가 품은 뜻을 알리기 위해 성지를 지키며 연구에 매진하고 계신 모든 관계자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 본문중에 '홍재영 프로타시오와 혼인하여 아들 성 홍병주, 성 홍영주'에서 성 홍병주, 성 홍영주는 홍재영의 조카이며 홍봉주가 아들입니다. 또, '김대건 신부 외 일행 13명이 표류하지 않고'에서 13명은 11명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노정남(아가다·서울 한강본당)